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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의 세월 만큼 빛바랜 갈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푸른 빛을 머금고 있는 건물 하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하늘 색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주변 건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감을 뽐내다가도 해 질 녘 무렵이면 차분한 금빛으로 다시 한번 물들며 다른 건물들의 낡은 갈색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서울대학교가 40여년 만에 갖게 된 또 다른 중앙도서관 '관정관'은 건물 전체가 바깥을 비추는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되어 있어 하늘이 변하는 속도 만큼 시시각각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관정관은 입지 선정에서부터 설계자에게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캠퍼스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도서관 본관과의 연계를 위해 다른 부지가 아닌 본관 주변의 좁은 부지에 지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관악산의 건축고도 제한과 주변 건물과의 조화 등의 문제로 인해 고층 건물로 짓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태용 테제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 같은 불리함을 독특한 설계로 극복했다. 본관 건물을 '기역(ㄱ)'자 형태로 뒤에서 감싸 안는 듯한 모습으로 관정관을 짓기로 한 것이다. 본관 건물과의 연결성을 극대화하면서 최대한 넓은 면적으로 관정관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설계안이 마련되자 이번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국내 건축물 중 가장 긴 165m 길이의 건물을 어떻게 본관 위로 올릴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본관 윗부분을 지지대로 삼기에는 낡은 콘크리트가 하중을 버텨줄 가능성이 낮았다. 결국 건물의 가로 부분에 해당하는 6~8층을 공중에 띄우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길이 112.5m, 폭 30.5m의 메가 트러스 네 개를 이용해 지표면에서 미리 트러스를 설치하고 공중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HSA800'이라는 특수강재를 생산해 무게를 30% 이상 줄이고 강도는 40% 이상 높여 트러스를 조립한 뒤 이를 들어 올려 수평으로 이동시키며 설치했다. 토목 교량현장에서 사용되곤 하는 '리프팅 앤드 슬라이딩(Lifting & Sliding)' 공법이다. 건축 분야에선 국내에서 최초로 적용됐다.
건축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입면은 알루미늄 패널과 유리 창문을 지그재그로 교차시켜 구성했다. 가로 0.625m, 세로 1.25m 직사각형 모양 패널의 개수만 해도 4,000장이 넘는다. 하루 그리고 사계절에 따라 건물에 다른 방향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기 위해 창문을 햇빛의 반대편으로 냈으며 알루미늄 패널도 여닫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새벽녘 짙은 남색 하늘부터 화창한 날 푸른 하늘과 노을 지는 붉은 하늘까지 모두 관정관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특히 노을빛으로 물든 관정관은 중앙도서관 본관과 그 어느 순간보다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서로를 이해하며 감싸 안는 듯 신·구가 한 모습으로 뒤엉킨다. 관정관 내부에서도 신·구의 조화를 찾아볼 수 있다. 1~2층 본관과 관정관이 맞닿는 경계선에는 본관의 외벽 콘크리트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낡고 투박한 모습으로 역사를 담고 있는 본관과 이제 막 역사를 짓기 시작하는 관정관 사이에 자리 잡고 서 있다 보면 서울대의 과거와 미래를 한 번에 경험하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서울대의 역사·장소 상징하는 빛을 디자인" 설계자 유태용 테제건축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