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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호주 등 12개 국가가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최종 협상에서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외신들은 TPP 회의가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우선 협상에 참여한 각국 대표들이 최종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잇따라 발표했다. WSJ에 따르면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정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전 회의에서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며 "조만간 참여국가들이 합의한 원칙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선임 부회장인 태미 오버비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비야레알 멕시코 경제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TPP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낙관했다. 당초 이번 TPP 회의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3일 연장돼 이날까지 마라톤 협상을 이어왔다.
TPP 협상은 관련국들이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던 신약 특허 보호기간에 대해 합의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미국은 의약품 특허 보호기간으로 8년을 주장해왔으나 호주를 비롯한 일부 나라들은 5년으로 줄여야 한다고 고집해왔다. WSJ는 이날 앤드루 롭 호주 무역장관이 "협상 참여국 모두와 합의를 이룬 건 아니지만 미국과는 합의를 끝냈다"고 밝혔다며 호주가 미국의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측 대표인 아마리 경제재정상도 "가장 큰 현안이었던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과 호주 등 관계국 협의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은 쌀·쇠고기의 양허 범위를 늘려 농산물에 관한 내용을 최종 합의했다. 일본이 5대 중요 품목으로 지정했던 쌀의 경우 미국산 5만톤, 호주산 6,000톤으로 무관세 수입물량을 설정한 뒤 13년 차부터 각각 7만톤, 8,400톤으로 확대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쇠고기 관세율도 현행 38.5%에서 TPP 발효 즉시 27.5%로 낮추고 16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 최종적으로 9%까지 내리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TPP 협상 타결의 파장은 단순히 세계 최대 경제권이 탄생했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미국이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지렛대로 삼아 지적재산권, 서비스 무역, 노동·환경규제, 전자상거래 등 신종 무역 이슈에서 새로운 국제규범을 만들고 글로벌 경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은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에 이어 이번 TPP 타결로 중국 봉쇄전략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이번 TPP 협상안은 관세 철폐, 교역장벽 제거, 투자·서비스 규칙, 지적재산권 보호, 노동·환경 보호, 규제 투명화, 국유기업 우대조치 축소 및 폐지 등 31개 분야에 걸쳐 역내 무역자유화 촉진 조항을 담고 있다. 당초 TPP 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자동차 관세, 농산물 수입 등을 둘러싼 미일 간의 의견 차였다. TTP 경제권에서 이들 두 국가의 비중은 80%에 달한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양자협상을 통해 의외로 조기에 타결됐다. 일본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에 부과되는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 및 인하고 연간 7만톤의 미국산 쌀을 수입하기로 했다. 미국산 와인에 붙는 관세도 제로가 된다.
반면 일본은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 부품 수출품목의 80%에 대해 관세(2.5%)를 TPP 발효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완성차의 경우 베트남은 대형 차량에 대해 현행 70%의 관세를 앞으로 10년 안에 철폐하게 되며 캐나다도 6%의 관세를 앞으로 몇 년 내에 없애기로 했다.
동남아시아 국가의 TPP 참여국에 대한 금융·소매판매·통신규제도 대폭 풀린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외자 편의점에 대한 출자금지 조치를 풀고 외국 은행들이 점포 외부에 ATM을 설치하는 것도 인정한다. 베트남은 TPP 발효 5년 뒤 외자 기업이 심사 없이 500㎡ 미만의 슈퍼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은행과 통신회사에 대한 외국인투자 비율의 상한선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또 자동차 수출국인 일본과 멕시코 간 이해관계가 상충됐던 자동차 부품 원산지 문제의 경우 부품의 55%를 역내에서 조달하면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설명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이경운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