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17> TPP와 배타적 클럽




‘나는 나를 회원으로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대중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쓴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 따르면, 배타적 클럽(exclusive club)은 아무나 쳐다보지 못할 만큼 그 장벽이 높아야 한다고 한다. 만약 누구나 그 클럽 안에 받아준다면?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것이다. 보통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만큼밖에 안 되는데 나도 받아준다고? 그러면 너희도 별 것 아냐.’ 스스로에 대해 애정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작정 호의적인 사람들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타적 그룹들이 지니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학자 폴 디마지오는 이런 그룹들이 내부에서는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외부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상징이나 행동, 스타일 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뉴욕 지역에 거주하는 박물관 기부자들의 모임이 있다 치자. 일단 경제적인 조건 이외에도 미술에 대한 애호, 사회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입회 조건들이 존재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사교를 나누지만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이해관계를 함께 하면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3대 배타적 클럽으로 불리웠던 호남 향우회, 고대 교우회, 해병대 전우회 등은 출신 배경을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였다. 이 또한 각자의 정체성(identity)을 기준으로 그룹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배타적 시스템이다.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동일한 행동 패턴을 통해 권력 집단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 할 수 있다.


사실 얼마 전 체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협정이 그런 배타적 클럽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최초 가입국은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금융, 의료서비스, 의약품 등에 존재하는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화하는 조건으로 맹약을 맺는다는 ‘관계의 전제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상주의적인 네트워크에 2008년 미국과 베트남 등이 가입했고, 최근에는 캐나다와 일본이 회원국이 됐다. TPP가 얼마 전 타결되기는 했지만 그 클럽 자체는 상당히 오랜 시일을 두고 어떤 형태로 결성할 것인지 고민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의 경제 공동체 비전이 가시화되면서, 위기감이 생긴 미국은 TPP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이 공동체가 각국 간에 맺은 FTA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메가 FTA’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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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TPP가 체결되면 우리나라도 몇몇 산업에서는 이들 ‘클럽’에 가입한 국가의 시장에 들어가는 데 일종의 장벽이 생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TPP 가입국들보다 매력도가 떨어지는 분야는 투자가 줄어들거나 핵심 외국 자본이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 비용이 저렴해 ‘세계의 공장’으로 주목받았던 중국은 더 이상 인건비 매력도가 크지 않은 관계로 상당수의 외국계 기업이 베트남으로 이전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저런 미디어들이 쏟아놓는 ‘배타적 클럽’에 대한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해 각국별로 완전히 TPP 이행 조치를 갖기까지는 1~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그 안에 가입하면 된다는 안심성 멘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배타적 클럽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유대감이 어떠한지를. ‘원년 멤버’들의 텃세와 자존감이 얼마나 큰지를.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신입학했느냐, 편입학했느냐를 두고 나름의 등급을 매긴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도 있는 판국에, 마치 마음만 먹으면 1~2년 안에 TPP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자신감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전망 아닌가. 방한 중인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7일 “한국이 원하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행간에는 아마 가입하고 싶다면 좀 더 노력하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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