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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낸다더니…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에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난이도를 유지하겠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와 달리 올해 수능이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되면서 중상위권 학생들이 '쇼크'에 빠졌다.
14일 오전 수능 가채점이 진행된 서울 서초고 3학년 교실. 학생들 상당수는 고교 3년간을 무겁게 짓누른 수능이라는 짐을 내려놓았는데도 굳어진 얼굴을 풀지 못했다. 모의평가 때보다 점수가 크게 떨어졌다는 걱정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학생은 "'재수각(재수할 느낌)'이다"며 애써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국어영역을 가채점하다가 그만두고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학생은 "국어가 정말 까다로웠고 예상보다 등급이 더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각 입시업체 취합 결과, 1등급 커트라인(컷)은 국어 A형 96점, 국어 B형 93∼4점, 수학 A·B형 96점, 영어 94점 수준으로 집계돼 예년보다 1등급 컷이 3~4점이 떨어졌다.
대체적으로 국어와 영어가 생각보다 어렵게 나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1등급 컷은 '물 수능' 논란이 없었던 평년 수능 때의 수준이었지만 평가원이 설명한 출제 기조와 달랐다는 설명이다. 특히 학생들은 영어의 난이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수험생 인터넷 커뮤니티 '오르비' '수만휘'에서도 '듣기부터 폭망(심하게 망했다)' '빈칸 네 문제 다 틀렸다' 등의 글들이 쏟아졌다. 영어는 올해 치러진 6월, 9월 모의평가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야만 1등급일 정도로 쉽게 출제됐지만 1등급 컷이 3년 만에 처음으로 95점 아래로 떨어져 체감 난도가 유난히 높았다. 각 입시기관에서는 2018학년도 수능 영어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되는 만큼 영어의 쉬운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었다.
9월 모의평가에서 만점을 맞았지만 올 수능에서는 10점이 떨어졌다는 이모(경문고 3학년)군은 "평가원에서 9월 모의평가와 같은 기조로 출제하겠다는 말을 믿었다"며 "영어는 쉽게 출제되기 때문에 다른 과목에 '올인'했는데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윤성웅 수원 영복여고 영어교사는 "난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다기보다 학생들이 6월·9월 모의평가에 맞춰 쉬운 공부를 했는데 예상과 다르다 보니 당혹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쉬운 수능예고에 따른 학력저하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고은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교육 당국이 계속해서 쉬운 수능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암시를 해오면서 이에 맞춘 학생들이 타격을 받은 상황"이라며 "수능이 변별력을 확보해가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평가원에서 모의평가와 일관된 기조로 출제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유명 입시학원에서는 쉬운 문제를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푸는 훈련을 시키는 등 쉬운 수능에 맞춘 공부를 주요 전략으로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심화 문제 등에도 연습이 많이 된 재수생,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배용 경복고 3학년 부장교사는 "원래도 일반고의 경우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비율은 한 반에 5명 내외 수준"이라며 "체감 난도가 높은 이번 수능에서는 일반고 학생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