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16> 이성계는 어떻게 리더가 되었나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성계로 등장하는 천호진. /사진=SBS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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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성계로 등장하는 천호진. /사진=SBS홈페이지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첫 방송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유아인, 천호진, 신세경 등 스타급 출연진들의 등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경 자체가 조선의 건국 과정을 다루고 있는 탓도 클 것이다. 왕조 개창은 언제나 번영과 갈등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스토리다. 특히 새로운 리더십을 확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참고 대상이다.


‘육룡이 나르샤’ 1화는 고려의 실권을 쥔 권력자 이인겸(이인임을 바탕으로 한 가공인물)과 이성계의 대립을 다룬다. 원래 이성계는 전주에서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토착 세력의 아들이었다. 자연히 고려를 지배하던 원나라의 다루가치(현지 지배를 맡은 관리자들)와 친해지면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라는 관청의 만호(萬戶) 노릇을 하던 아버지 이자춘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쌍성총관부는 원나라가 고려를 착취하는 곳으로 고려인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고려를 원의 간섭에서 독립시키려던 공민왕의 욕망과 의지가 집중된 시기였기에 ‘타도해야만 하는 그곳’에서 살아가던 고려인들은 ‘부원배’(附元輩), 즉 매국노로 불렸다. 정사(正史)는 이성계 일가가 다루가치들을 몰아내는 데 일조한 토벌군과 내응(內應)했다고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원나라의 입장에 섰다가 배신해서 고려에 붙은 것이다. 이 사실은 두고두고 이성계를 괴롭혔다. 고려 말기를 대표하는 군사 실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래는 배신자였다는 사실이 콤플렉스가 된 것. 실제로 이인임은 이런 이성계의 약점을 이용해 한때나마 자신의 수하가 되었음을 선포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이성계는 이인임과 그 주변 세력을 타도하고 신진사대부를 등에 업고 집권자가 된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고려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최영과 정몽주 등을 저버리게 되고,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를 시작한 끝에 조선을 건국한다. 그 이후에도 이성계가 왕씨를 전부 학살했다는 이야기나, 두문동에서 은둔한 고려의 옛 신하들이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는 새 왕조 병사들에게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는 일화 등은 두고두고 조선이라는 국가의 콤플렉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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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 건국 과정을 되새긴다. 유독 조선 건국과정이 그러하다. 사극의 소재로 자주 쓰여서만은 아니다. 대중들이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조선 왕조의 개창이 당시 시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심이 고려에서 돌아섰고, 계속되는 권문세족 정치의 모순으로 인해 사실상 고려의 체제로는 더 이상 민중들의 절대 생존권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리더는 단순히 자신의 실력과 자본만으로 혁신을 완수할 수 없다. 그 과정에 동참하는 수많은 사회적 동반자들의 박수와 지원이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한 것이다.

이성계의 사례는 콤플렉스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정당한 명분과 실력을 갖고 있다면 새로운 국가를 일으키는 주역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옛날 이성계가 정사에서 기록한 것처럼 배신자였는지 아닌지는 소수만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날의 리더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심지어 핸드폰 문자까지도 모두 노출되고 SNS나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다. 사람들이 지지할 수 있는 합당한 명분이 있다면 쉽게 알리고 지지를 얻기가 수만 배는 쉬워진 셈이다. 이렇게 환경이 좋아졌는데도 오늘날 리더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왜 대중의 마음을 읽는데 게으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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