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간송 전형필









1930년 와세다대를 졸업한 간송 전형필은 상복을 입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1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전답을 둘러보고는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황해도·충청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논밭은 모두 800만평, 땅값은 200만원에 달했다.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니까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한 채 값을 3억원으로 잡으면 6,000억원 정도 된다.

그는 이 재산을 놓고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선생의 말씀을 떠올렸다. 휘문고보 때 스승인 선생은 그에게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서화 전적을 왜놈들로부터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재산과 젊음을 바쳐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도자기·불상·석조물·서적 등을 수집했다. 그가 수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은 해방 후 그 가치를 인정받아 12점은 국보, 10점은 보물, 4점은 서울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됐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동국정운·금동여래입상 등이 모두 간송 덕분에 지금 우리 손에 있다.

그가, 자신이 수집한 숱한 문화재 중에서도 최고로 치며 아낀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의 원리와 사용방법을 적은 책으로 국보 70호이며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간송 일대기를 쓴 책 '간송 전형필'을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광산 김씨 종가의 긍구당 서고에 있던 광산김씨 문중의 가보로 1942년 사위인 이용준이 몰래 빼돌려 간송에게 팔았다. 이용준은 당시 책값으로 1,000원을 요구했으나 간송은 문화재의 가치는 정확히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 만원을 줬다.

한글날을 앞두고 훈민정음 해례본이 원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복간본으로 나왔다. 국민 모두가 손쉽게 한글의 자긍심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하늘에 있는 간송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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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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