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43> 중독 사회




연말이 되면서 모임자리가 많아졌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술 몇 순배 돌고 나면 예전과는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탁자 밑에서 두 손이 바삐 움직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무엇을 보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고 하거나,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는 답을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모임에 참석한 이유가 관계 형성을 위함 아니던가. 관계를 위한 자리에서 또 다른 ‘관계’를 위해 모바일 폰에 시간을 투자하는 모양새다. 모순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 또한 현대인의 현주소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한때 모바일 폰 중독, 게임 중독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였다.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Gary Becker)에 따르면 중독은 미래에 얻을 편익을 최대로 현재에 할인해서 사용하려는 경향과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놀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 있다 치자. 그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선택할 수 있다. 일을 끝내고 친구를 만날 것이냐, 일을 미루고 지금 당장 친구를 만날 것이냐. 그가 당장 현재에 미래의 욕망을 누리기로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 점점 몰입하여 다른 일을 게을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중독은 어떤 상태에 깊게 몰입하여 일상생활의 기회비용이 커지게 만드는 행위다. 열 일 제쳐놓고 그것만 하게끔 하는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중독에 대한 베커의 설명이 의미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과학자들은 담배, 술, 또는 포르노와 같은 특정 대상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 영역 영상을 분석해 본 결과 정상인에 비해 좁아진 뇌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떤 것에 중독된 사람이 틀을 깨는 사고를 하기 힘든 이유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굳이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아도 모든 문제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창의력은 매우 동떨어진 것 아니겠나. 그래서 망국의 군주들이 그토록 예술에, 주색잡기에 중독되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에 매달려 있느라 다른 것들을 챙길 수 없는 사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환경 변화가 인생을 불운으로 몰고 간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관련기사



최근 들어 중국의 마약 단속이 더욱 엄해졌다고 한다. 특히 신장지구를 비롯해 정치적 분열상이 극심한 지역에서 테러단체들이 마약을 밀매하며 자신들의 군사 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여럿 포착됐단다. 중국은 마약 중독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 옛날 처음으로 서구 열강에게 참패를 맛보았던 아편 전쟁의 원인이 중독 때문인 탓이다. 한간(漢奸) 노릇을 했던 만주국(滿洲國) 관계자들이 2차 대전 종전 이후 엄하게 처벌받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주국은 당시 일본과 합작하여 일만토약(日滿土藥)이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이 조직은 만철(滿鐵)과 함께 마약으로 중국과 내몽골 일대를 오염시키는 데 일조했다. ‘나라를 망조로 몰고 간 중독’을 중국인들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고, 온갖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있다.

중독이 위험한 건 맞다. 어느 나라나 온갖 ‘중독’을 막기 위해 예방법, 지침, 캠페인부터 강제성 있는 정책, 규제까지 쏟아내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독되지 않고서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특히 일 중독.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업무시간만 지켜서 일하게끔 돕는 회사가 얼마나 있나. ‘삶을 피폐하게 하니 못하게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규제하지 않아도 중독의 위험이 적은 환경’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나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