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이루려면

통일 첫 단추, 北주민 신뢰확보

조한범 통일연구원

제20차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며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상봉정례화까지 언급했다. 때마침 민간 분야의 방북도 줄을 잇고 있다. 8·25남북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은 물론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6·15기념일에는 공화국 성명을 내고 남북 당국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 행사에서도 우려됐던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지 않았다. 중국은 3차 북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자국의 국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월 방미 중 "안보리 결의는 완벽히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북한을 겨냥했으며 북한 당 창건 70주년에는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이 방북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로켓 발사를 시도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국정원이 밝힌 대로 김정은 정권의 결속력은 선대에 비해 현저하게 약하며 일부 장마당 경제를 제외한 국가 경제 전반은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이었던 대중 무연탄 수출은 국제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가뭄으로 식량사정 악화도 자명하다. 북한이 그동안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만큼 김정은 정권의 내부사정이 복잡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실리를 확보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점이다. 북한은 그동안 도발과 대화을 반복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 합의 파기에 따른 부담을 감수해야 했으며 이는 진보와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대북정책의 추진력을 약화시켜온 주요 요인이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뢰 프로세스는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내는 것이다.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 대상은 북한 정권만이 아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독일 통일의 원동력은 동독 주민의 서독 체제에 대한 굳은 신뢰였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최근 몇 년간 북한 주민의 대남인식은 악화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희망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경험하지 않은 옛 공산국가들이나 중동국가 체제이행 과정의 혼란상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내 긍정적 변화의 요소가 발현되지 않는 한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 이를 위해 북한에 대한 '예방적 관여정책(Preventive Engagement Policy)'으로의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인도주의 문제만큼은 한국 정부가 무한책임을 선언해야 한다. 이산가족과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아울러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과 의약품 지원은 조건 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북한 주민은 헌법상 한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관계가 일정 정도 임계점을 넘을 경우 북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거다.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최근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행사차 방한했던 동독 출신 고위인사가 전해준 말이 귓가에 맴돈다. "독재와 민주주의 간의 통일은 불가능하며 동독에 대한 지원은 동독 정권이 끊을 수 없는 마약으로 작용했다. 자유도 마약이다." 북한의 변화 유도와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형성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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