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매년 5월 말 쇤브룬궁전서 야외공연을 연다. 입장료가 없다 보니 당일 참석 인파는 1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해외 관광객들은 이 야외공연에 맞춰 여행 일정을 잡을 정도라니 이만 한 관광 마케팅도 없을 듯하다. 이 야외공연은 단지 연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음악회가 끝나면 궁전 정원을 둘러볼 수 있게 새벽1시까지 문을 열어둔다. 야외공연도 보고 역사적인 쇤브룬궁전도 함께 보는 덤을 얻어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10만명의 인파가 찾지만 자그만 사고 없이 관리하는 시스템도 '예술'의 경지다.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시민을 위한 야외 무료공연을 많이 열어왔다. 시민들이 접근하기 좋게 한강 변이나 서울광장·광화문광장·어린이대공원 야외공연장서 꾸준히 야외공연을 해왔다. 그런데 빈 필하모닉의 쇤브룬 공연과 비교하면 스케일이나 실험정신에서 소박하기 이를 데가 없다. 오히려 시향의 서울광장 공연 때는 차량이나 주변 집회소음으로 관람객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감동이 반감됐다는 지적도 있다. 주변 집회 참가자들이 공연 음향이 시끄럽다며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바람에 나중에 관람객들과의 몸싸움으로 번질 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말이 공연이지 시끄러운 시장통에서 연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감동은 없고 야외연주 실적만 올리는 꼴이다.
시향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경희궁 잔디광장에서 고궁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마저도 지금은 중단됐다. 시향 측은 화재나 기물파손 등의 우려 때문에 보험 등에 엄청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문화재청 심사에서도 계획안이 채택돼야 하는 등 준비 과정이 녹록지 않다고 토로한다. 한마디로 준비 과정이 너무 까다롭고 어렵다는 말이다.
최근 만난 시향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경복궁 마당에서 정말 근사한 연주를 하고 싶다"고 호소 아닌 호소를 했다. 고궁 내 연주를 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여러 주변 여건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남대문 화재 사고 후 문화재 보호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진 것도 있지만 작은 사고라도 내지 않기 위해 아예 행사를 축소하거나 개최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규제'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도 들린다. 의도야 무엇이든 지금보다는 고궁을 활용하는 데 좀 더 수월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임에 틀림없다.
서울시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이 완전히 회복되면서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위한 '서울관광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관광객 2,000만명 시대' 구호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다운 볼거리가 없는데 어떻게 2,000만명을 불러들이느냐'는 원초적인 질문이 해소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고궁을 보호하고 보여주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쇤브룬궁전의 야외공연처럼 고궁을 활용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려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고궁이 정 어렵다면 한강 가운데 거대한 무대를 만들고 강 양편에서 감상할 수 있게 대규모 음악회를 여는 것은 어떤가. 관광도시 서울을 위해 이보다 더한 파격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홍길 사회부 차장 wha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