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2015 별들의 골프축제… 가슴이 뛴다] 여자골프 장·타·자 전성시대

길어진 코스에 그린 변별력 낮아져 장타자 상위권 점령

골프특집 박성현
박성현
김민선
김민선
박지영
박지영
이정은
이정은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You drive for show, but putt for dough)'. '퍼트 달인' 보비 로크(남아프리카공화국)가 남긴 말이다. 로크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호쾌한 드라이버 샷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이다. 자기처럼 퍼트만 잘해도 우승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드라이버 샷을 멀리 펑펑 날리지만 퍼트에 다소 약한 사람보다 드라이버 거리는 짧아도 퍼트에 귀신인 사람이 내기 골프에서 돈을 따는 법이다.

로크의 '퍼팅 찬양론'은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드라이버 샷 거리 공동 78위(평균 291.8야드)의 조던 스피스(미국)가 라운드당 퍼트 수 최소 1위(27.82개)의 퍼트를 무기로 최근 끝난 2014-2015시즌 상금랭킹 1위(1,203만달러)에 오른 것이다.

스피스는 포스트시즌 격인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도 최종 우승해 1,000만달러 보너스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드라이버로 평균 313.7야드(3위)를 날린 제이슨 데이(호주)가 스피스와 똑같이 시즌 5승을 올린 것도 큰 화제였다. 드라이버 샷의 파괴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데이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당장 다음 시즌부터 스피스의 왕좌를 거세게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세계 주요 투어 가운데 장타자 득세 경향이 가장 뚜렷한 무대 중 하나다. 일단 드라이버 샷을 멀리 날리고 보는 장타자들이 상금랭킹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상금랭킹 선두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드라이버 샷 평균거리 247.74야드로 전체 11위에 올라있고 상금 3위 이정민(23·비씨카드)도 249.74야드의 드라이버 샷으로 전체 6위에 올라있다. KLPGA 투어에서 드라이버는 쇼이자 돈인 셈이다. 여자 골퍼들의 화려한 외모와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구경하러 온 갤러리들은 남자 아마추어를 압도하는 엄청난 거리에 매료되고 만다.

◇코스 길어지고 그린 변별력 낮아지자 장타자 펄펄=최근 KLPGA 투어 YTN·볼빅 여자오픈이 열렸던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의 대회 코스 길이는 무려 6,812야드(파72)였다. 국내남자프로골프 투어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일부 대회장보다 코스 길이가 더 길다. 올해 KPGA 투어 매일유업 오픈 때 대회장인 대전 유성CC의 코스 길이는 6,796야드(파72)였다.

KLPGA 투어의 코스 길이는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길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KLPGA 투어를 거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한 선수들은 거리 때문에 애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국내에서 긴 코스에 단련됐기 때문이다. 그린 변별력이 낮아지는 것도 장타자 득세에 한몫하고 있다. 요즘 KLPGA 투어의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 3.5m 안팎인 경우가 많다. 스팀프미터는 그린 스피드를 측정하는 기구로, 1m 길이의 막대를 30도 정도 기울이고 그 위에서 공을 굴려 멈추기까지의 거리로 측정한다. 일반 아마추어들이 경험하는 골프장의 스팀프미터가 아무리 빨라도 3m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3.5m는 어마어마한 스피드다. 이 정도라면 사실 누구에게나 어렵다. 드라이버 샷보다 퍼트에 강점을 가진 선수들은 조금 불만일 수 있다. 반대로 장타자들은 길어진 코스에서 시원한 드라이버 샷으로 훨씬 더 편한 경기를 펼치고 그린에서는 다같이 쩔쩔매니 크게 잃을 게 없다.

◇OB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미사일 샷을 얻을지니=올 시즌 KLPGA 투어 최고 장타자는 박성현(22·넵스)이다. 지난 시즌 우승 없이 상금랭킹 34위에 그쳤던 박성현은 올 시즌은 2위에 올라와 있다. 지난 시즌 상금인 1억2,000만원은 올 시즌은 시즌 초반인 6월에 이미 넘어섰다.

박성현은 올 시즌 드라이버로 평균 256.24야드를 날리고 있다. 171㎝의 큰 키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유연성과 골반이 핵심이 되는 스윙을 앞세워 여자프로골프 대표 장타자 타이틀을 얻었다. 2부 투어 상금왕을 거쳐 지난 시즌 K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성현은 데뷔 첫 해에는 10위 내 진입이 3번뿐일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혹독한 1부 투어 적응기였다. 원인은 드라이버 샷에 있었다. 100% 힘을 들이지 않고도 250~260야드를 너끈히 날리는 박성현은 그러나 가운데로 공을 보내지 못했다. 한 라운드에도 몇 번이고 반복해 코스를 벗어나는 아웃오브바운스(OB)가 났다.

OB는 장타자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세게 멀리 보내려다 보면 OB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박성현은 이미 고교 시절 OB 탓에 큰 시련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구미 현일고 2학년 때부터 3년간이나 드라이버 입스(yips·샷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 증세)에 시달린 것. 한 라운드에 10개씩 OB가 나기도 했다. 입스의 처방은 따로 없다.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박성현은 수 년 전 찾아온 입스 때 정면돌파로 악몽을 탈출했다. "공을 많이 치면 결국에는 고쳐진다는 생각으로 매달렸다"고 했다. 그때의 경험이 박성현을 최고 장타자로 만들었다. 제대로 맞히면 270야드 이상도 나가고 3번 우드로도 240야드를 쉽게 보낸다. 박성현은 "공을 달래서 치지 않고 와일드하게 쳐야 한다. 그렇게 치면 오히려 방향성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OB와 스코어를 의식한 나머지 제 스윙을 하지 못했던 박성현은 올 시즌 들어서는 티잉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 있는 스윙으로 팬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요즘도 가끔 OB가 나 한꺼번에 많은 타수를 잃기도 하지만 바로 다음 홀에서 만회하는 능력이 생겼다. 지난 시즌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OB가 났다고 해서 다음 홀에서 페어웨이를 지키는 데 급급한 스윙으로 돌아섰다면 지금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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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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