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2009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신인왕. 김도훈(26·사진)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한국 남자 골프 '차세대 간판'으로 기대를 모았다. 재능 있는 '영건'은 2010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미국 무대로 가는 수순을 제대로 밟는 듯했다. 하지만 불청객인 팔꿈치 부상과의 싸움 끝에 5년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내년 시즌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 15일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2주 전 귀국해 대구의 집에서 휴식과 체력훈련을 겸하고 있다는 김도훈은 "올해 성적 부진으로 내년 JGTO 시드권을 잃었지만 4년 만에 처음으로 팔꿈치 통증 없이 시즌을 보냈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일본 투어에 데뷔해 두 차례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금랭킹 11위를 차지해 연착륙에 성공했다. 우승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연습 강도를 높였지만 그게 불운의 화근이 됐다. 2011년 시즌을 앞둔 전지훈련 때 매트에서 볼을 때리다 왼쪽 팔꿈치에 손상을 입은 것. 흔히 '엘보(elbow)'로 불리는 팔꿈치 부상은 골퍼에게는 치명적이다. 첫 승을 위해 통증에도 연습을 멈출 수 없었다. 치료를 받아도 연습을 하면 다시 아팠고 특유의 호쾌한 스윙을 하지 못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고 또 통증 속에 연습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2013년부터는 미국 진출 꿈은커녕 시드 유지에 급급해야 했다. "목표를 갖고 앞만 보고 골프를 해야 하는데 몸과 성적이 따라주지 않으니 시드를 잃을까 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고 회상했다.
시드를 잃고 좌절하지는 않았을까. 김도훈은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면서 "이제 다시 시작하면서 앞을 보고 나가면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프로 데뷔 후 잠깐 뛰었던 KPGA 무대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라 설레기도 한다"는 그는 자신감도 있다. 올해 초청을 받아 출전한 KPGA 투어 3개 대회 상금(7,540만원)으로만 시즌 랭킹 32위에 올라 내년 시드권을 확보했다. GS칼텍스 매경오픈 공동 2위, 바이네르 오픈 공동 24위 등으로 예리한 샷을 과시했다. 스윙 교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파르게 내리치던 스윙에서 좀 더 평탄한 스윙으로 바꾸는 중인데 왼쪽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가 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올 시즌 JGTO에서 평균 287.24야드(14위)를 기록한 드라이버 샷은 국내 톱5 수준이다. KPGA 투어에서는 2010년 동부화재 프로미 군산CC 오픈에서 6차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기억이 있다.
스스로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마감했지만 일본에서 배운 점은 골프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상황마다 경기를 풀어가는 방법이라든가 하는 점에서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며 "친하게 지냈던 (JGTO 통산 29승의) 가타야마 신고(42)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와 행동거지를 보며 느낀 게 많았다"고 했다. 국내로 U턴을 했어도 안주할 생각은 없다. "국내에서 기량을 끌어올린 뒤 골프를 하며 늘 꿈꿨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할 겁니다. 하지만 최경주·김경태·배상문 선배들처럼 먼저 국내 무대에서 최고가 된 뒤 눈길을 돌리는 게 순서라는 사실을 일본 진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KPGA 회원번호가 752인 김도훈은 한자 이름과 나이까지도 똑같은 부산 출신 김도훈(26·회원번호 753)과 다시 동명이인 경쟁도 펼쳐야 한다. 그는 9월 한국 오픈 때는 자신의 상금이 부산 김도훈의 통장에 입금돼 돌려받는 해프닝도 있었다며 웃었다. 6년 만에 두 번째로 KPGA 투어 풀시즌을 치르는 김도훈이 스타 부재로 고민하는 KPGA 투어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