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8번홀(파5) 김혜윤(26·비씨카드)의 세 번째 샷.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볼이 그린 위에 떨어지자 갤러리의 함성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홀을 향해 구르던 볼은 깃대를 맞힌 뒤 60㎝가량을 지나쳐 멈췄다. 이글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짧은 버디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킨 김혜윤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김혜윤이 3년의 우승 갈증을 시원하게 날릴 수 있게 한 환상적인 샷이었다.
김혜윤이 1일 경남 거제의 드비치 골프클럽(파72·6,482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서울경제·문영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쓸어담은 그는 최종합계 6언더파 210타를 기록해 조윤지(24·하이원리조트)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상금 1억원을 받은 김혜윤은 상금랭킹 18위에서 9위(3억3,399만원)로 점프했다.
김혜윤은 드라이버 샷을 할 때 발을 모으고 어드레스를 했다가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디디면서 백스윙을 하고 다운스윙 때 왼발을 왼쪽으로 내디딘다. 스텝을 밟는 듯한 동작 때문에 '스텝스윙'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63㎝의 키에 가냘픈 체격을 가진 김혜윤이 고교 1학년 때 체중 이동을 늘려 샷 거리를 늘리려고 고안한 방법이다. 특히 정교한 플레이가 일품인 그는 지난 2011년까지 통산 4승을 거둔 후 거의 4년을 우승 없이 보내다 마침내 다섯 번째 우승컵을 수집했다.
1·2라운드 때 선수들을 괴롭혔던 바닷바람이 이날 잠잠해지자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졌다. 2라운드에서 선두에 나섰던 윤채영(28·한화)이 초반부터 뒷걸음을 하면서 중반 이후 우승 경쟁은 매서운 샷을 과시한 김혜윤과 조윤지의 대결로 압축됐다.
승부는 정교함에서 갈렸다. 김혜윤의 이번 시즌 드라이버 샷 평균거리는 238.30야드(48위). 248.88야드로 8위에 올라 있는 조윤지에 비해 10야드 정도 짧지만 김혜윤에게는 비밀병기인 날카로운 쇼트게임과 퍼트가 있었다.
선두 윤채영에 5타 뒤진 공동 8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김혜윤은 1번(파4)과 2번(파5), 4번홀(파4)에서 세 차례나 연달아 그린 주변 칩 샷을 홀에 집어넣는 묘기를 펼쳤다. 칩 샷 버디가 한 라운드에서 세 번이나 나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이후로는 면도날 퍼트가 이어졌다. 버디 퍼트는 물론 긴 파 퍼트도 홀에 떨궜다. 7번(파5)과 8번홀(파3) 연속 버디를 잡아낸 김혜윤은 자신보다 2타 앞선 공동 3위로 출발한 조윤지와 공동 선두가 됐다. 3개 조의 간격을 두고 있었지만 경기 양상은 김혜윤과 조윤지의 매치플레이 같았다. 앞서 경기한 김혜윤이 버디를 하면 조윤지가 버디로 응수했다. 우승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승부의 추는 17번(파3)과 18번홀(파5)에서 김혜윤 쪽으로 기울었다. 가장 까다로운 홀 가운데 하나인 17번홀에서 파를 지켜낸 김혜윤은 18번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을 깃대에 맞히는 버디를 잡아내며 1타 차 선두로 먼저 경기를 끝냈다. 조윤지는 17번홀에서 티샷을 그린 오른쪽으로 보낸 데 이어 두 번째 어프로치 샷을 실수해 이날 유일한 보기를 적어냈다. 2타의 열세를 안고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잡아야 공동 선두가 될 수 있었던 조윤지의 세 번째 샷이 홀과 먼 곳에 떨어지면서 승부가 마무리됐다. 본부석에서 조윤지의 경기를 지켜보던 김혜윤은 미소를 지었다.
시즌 두 번째 우승을 노리던 조윤지는 12번홀(파5) 1.5m 버디 퍼트 등 후반 수차례 만들어낸 기회를 버디로 연결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윤채영은 4타를 잃고 공동 6위(1오버파)로 마감했다.
시즌 상금랭킹 1위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10번홀 티샷을 마치고 어깨 통증으로 기권했지만 상금왕을 확정했다. 전인지와 상금왕 경쟁을 벌인 2위 박성현(22·넵스)은 2타를 줄여 공동 9위(2오버파), 3위 이정민(23·비씨카드)은 공동 21위(5오버파)로 대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