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모바일게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업체인 '헝그리앱'의 게임페이 지에는 현재 5,700여개에 달하는 게임 콘텐츠가 등록돼 있다. 설립 11년여째인 이 업체가 내세우는 모토는 '이용자가 직접 만드는 게임'인데 그 바탕에서 빅데이터 기술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자사 페이지에 등록된 게임을 어떻게 내려받고 설치한 뒤 실행하는지, 혹은 지워버리는지 등의 사용 이력자료를 축적해 고객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마케팅한 것이 성공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 비결에도 빅데이터가 있었다. 해당 드라마를 내놓은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작이 BBC 드라마인 점을 감안해 BBC 드라마를 선호하는 가입자들의 취향에 초점을 맞춰 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BBC 드라마를 좋아하는 넷플릭스의 가입자들이 영화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한 영화 콘텐츠를 많이 시청했다는 점을 파악했고 이에 따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케빈 스페이시를 섭외한 것이다.
국내 문화 콘텐츠 기업들이 도전과제 앞에 섰다. 감성에 의존한 경영 방식에서 한층 진화해 방대한 고객 통계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경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각종 채널을 통해 수집한 시장 관련 자료를 분석해 족집게 식으로 수요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생존의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게임·방송·음악 등 문화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도 미국 등 선진국 대기업처럼 상품의 초기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부터 제작, 마케팅,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국내 각 콘텐츠 산업 분야의 선두 기업들은 앞다퉈 빅데이터를 도입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직감에 의존해 주먹구구 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이용자들이 실제로 좋아하는 요소를 명확하게 집어내 더 과학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특히 초 단위로 시청률을 관리해야 하는 방송 콘텐츠 분야의 움직임이 발 빠르다. 이들 업계 관계자들은 시청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시청자에게 맞춤형 방송을 추천하거나 제작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실시간으로 실적의 희비가 엇갈리는 음악 및 게임 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 분야 업체들은 음악 추천과 유행에 따른 음악 분석, 게임 분야에서는 이용자의 플레이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게임 개발, 유지 보수 및 이벤트, 아이템 제공 등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지상파 방송사의 PD는 "예를 들어 드라마를 기획할 때 방송작가는 특유의 감에 의존해 대본을 만들지만 제작 과정에서 빅데이터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 시청 후 반응 등을 분석해 드라마의 전개 방향, 주요 소재를 보완한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출연진 교체 등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게임사 "이용자 행동 파악해 이탈률 줄인다"
넷마블게임즈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게임 콘텐츠에 적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 기술의 이름은 '콜럼버스'로 이용자 성향, 행동 패턴에 대응해 개인별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임 서비스 엔진이다. 올해 안으로 신작 게임에 최초로 빅데이터 활용 콘텐츠를 추가한다는 계획으로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게임이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레이싱 게임을 하는 이용자가 특정 코너에서 실수를 반복해 어려움을 느낀다면 해당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경고 사인을 미리 주는 식으로 개인별로 가이드를 해준다. 또는 이용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곡선 코스 대신 직선 코스가 많은 트랙을 추천하는 식이다. 이렇게 된다면 게임이 어려워 이탈하는 이용자도 줄이고 게임 본연의 재미도 더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설창환 콜럼버스 센터장은 "콜럼버스를 통해 개인 이용자의 성향과 실력에 따라 적합한 콘텐츠를 제시해 이용자가 게임을 더 오래 더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빅데이터 기반의 게임사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넷마블은 현재 빅데이터, 통계 분석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방송 "기획-제작-마케팅에 통계분석 기법 활용"
방송 콘텐츠에도 빅데이터가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를 중심으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 푹(POOQ)은 자체 플랫폼 내 쌓인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지상파 방송사 등 콘텐츠 사업자(CP)들에게 제공할 계획을 세웠다. 이르면 내년께 푹에서 모인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에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푹은 현재 10초 단위로 이용자의 행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이를 분석해 섭외·각본·콘셉트 등의 방송 구성 요소에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20대 여성이 특정 연예인이 나온 예능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본다면 제작자들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연예인을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새 드라마에 섭외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출연진을 사람인 PD 대신 컴퓨터가 결정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기획과 제작뿐 아니라 마케팅에도 통계분석을 활용한 빅데이터 기법이 사용된다.
직감이 아닌 빅데이터를 이용해 작곡도 해
국내 음악 포털 멜론도 이용자들의 음원 이용 행태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아티스트에게 공급, 빅데이터에 기반한 음원 창작을 유도하고 있다. 멜론의 빅데이터플랫폼 'MLCP(Music Life Connected Platform)'에서 이용자의 음악 청취 이력통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음반 제작사, 아티스트 등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음원 이용자의 연령·성별과 시간에 따른 팬 증가 수와 음악을 접하게 되는 경로 등 다양한 변수를 알 수 있다. 아티스트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분석되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음원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 음원 제작기획단계부터 이용자들의 음악 감상 패턴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마케팅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멜론의 이 같은 서비스는 앞서 '나를 아는 맞춤 채널' 등을 통해 빅데이터 분석 노하우를 갖춰왔기에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멜론은 이용자가 최근 3개월 내 많이 들었던 곡과 유사한 곡이나 가수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에게 새로운 곡과 가수를 소개해줬다. 실제로 멜론은 가수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를 자주 들었던 이용자에게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다른 곡 'Thank your soul'을 추천해주고 있다. 멜론 측은 "자본이 많지 않은 소규모 기획사나 인디 밴드 등에 앞으로 음원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데 멜론의 빅데이터 플랫폼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콘텐츠 분야 빅데이터 분석 인력 중요성 더 커져
해외에서는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보편화된 단계다. 넷플릭스의 경우 전세계 5,700만명가량의 가입자를 바탕으로 각종 행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역·연령·장르·주제·출연진 등 세부 항목으로 분류해 콘텐츠를 분석한다. 일 평균 400만건이나 되는 이용자 별점, 검색 정보, 위치 정보, 주중과 주말의 시청 행태를 분석해 이용자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미국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 마케팅 과정에서는 이미 빅데이터 사용이 일상화돼 있다. 특히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영화 시장 분석업체들의 자료가 큰 영향을 미친다. 현지의 '릴 펄스'라는 영화시장 분석업체는 박스오피스 등의 데이터를 가공해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기 약 두 달 전에 관객 수 등의 흥행실적을 예상하는 데 영화 제작 및 배급사 등은 이를 판촉전략 등을 짤 때 요긴하게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등 신흥국에서도 콘텐츠 기업들의 빅데이터 사용은 확산되는 추세다. 중국판 페이스북으로 평가 받는 '런런왕'이 운영되는 '런런게임' 서비스에 수년 전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그 결과 중국 내 게임 산업이 총체적인 성장 정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2년 온라인게임 사업에서 전년 대비 무려113.2%의 성장률을 기록해 9,02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이후에도 실적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보다 데이터 분석기업에 가까운 넷플릭스는 이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머신러닝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게 만들어 정확성을 높이는 기술. 머신러닝을 통해 방대한 빅데이터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빅데이터 수집과 저장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역량의 중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박호현·김지영기자 greenligh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