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사우디, 시아파 47명 처형… 중동 '종파전쟁' 불붙나

"테러혐의" 고위 성직자 포함

이란 "큰 대가 치를 것" 분노

수니파-시아파 갈등 일촉즉발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반정부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한 47명을 테러 혐의로 전격 처형하면서 중동에 종파분쟁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의 앙숙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에서는 보복조치로 수감 상태인 수니파 성직자 20여명을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형국이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날 시아파 지도자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포함해 테러 혐의를 받던 47명을 처형했다. 알님르는 시아파 고위 성직자로 사우디에서 시아파의 권익을 주장하는 활동을 해오다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수감 중이었다. WSJ는 그동안 이란이 사우디에 알님르의 사면을 수차례 요구했었다며 사우디의 처형이 그렇지 않아도 위태했던 수니파와 시아파의 불화에 기름을 부었다고 전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사우디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처형을 즉각 규탄했다. 이란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사우디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를 지원하면서 국내에서는 압제를 통해 비판세력에 대응한다"며 "이런 정책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란의 고위 성직자 아야톨라 사이드 알모다레시는 "알님르를 살해한 것은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시위대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등 집단항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사우디는 이란 측에 "내정 간섭하지 말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아파와 충돌이 뻔한데도 사우디가 알님르의 처형을 감행한 것은 자국을 둘러싼 위기론을 잠재우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근 사우디 알사우드 왕가는 유가 급락으로 인한 재정위기에 예멘 내전의 장기화까지 겹쳐 귄위가 추락했다. WSJ는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이란 등 시아파 국가에 미치는 외교적 파장보다 정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엄단한다는 의지가 우선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의 종파분쟁 가능성이 커지자 서방 국가들도 우려를 표하면서 화해를 촉구했다. 미국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이날 알님르 처형이 종파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사우디는 긴장완화를 위해 모든 공동체 지도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성명을 통해 "사우디의 처형이 중동 전체의 종파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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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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