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46> 집순이가 뭐가 어때서




새해가 밝고 맞이한 첫 월요일. 연휴를 보내고 일터로 복귀한 많은 직장인들의 얼굴엔 결연한 각오가 묻어나는 듯하다. 이제껏 보내온 수많은 월요일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다. 기업의 수장들은 신년사를 통해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수준의 목표를 공개했다. 또 임직원들과 함께 산을 오르거나 강당에 모여 ‘목표를 목표로만 남기지 않는 한 해를 보내겠다’며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이렇듯 우리는 집 밖에서 숨 가쁘게 달릴 것을 강요 받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취미 없는 대한민국’의 탄생은 쓸 돈이 많지 않아서 혹은 시간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과도한 성과주의 탓에 지치고 피곤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이들을 가리켜 집순이, 집돌이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집순이, 집돌이를 나가면 다 돈이니까 반강제로 집에만 있는 다소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한다. ‘취미 없는 대한민국’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집순이, 집돌이는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로 여긴다. 이런 시각의 형성 배경은 ‘취미’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선뜻 “TV보기요”, “잠자기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력서 작성할 때를 생각해보자. 취미, 특기란을 자신 있게 채운 경험이 얼마나 있었나. 대외적인 취미는 수영, 농구 등 면접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스포츠 종목이 대부분이다. 운동을 취미로 가진 사람은 활발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일까. 이력서에 표기된 취미는 운동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운동과는 담쌓고 지낸 경우라면 식상하지만 독서로 때운다. 독서로 취미란을 채워 넣은 사람들 중 절반만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면 ‘한국, 독서량 순위 166위’라는 초라한 성적은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집에 있기’는 취미생활로 공표할 만한 게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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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순이는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자발적으로 집에서 쉬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즐긴다. 산더미같이 밀린 집안일을 몰아서 하기 위해 집에 있는 경우는 논외다. 셀프 인테리어 족의 급증 현상을 ‘저렴한 값에 집을 꾸미고 싶어서’라고 단정짓는 건 오류다. 값도 값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뿌듯함과 보람은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릴 것을 종용 받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부여하는 공간이 간절하고, 그래서 나만의 공간을 나만의 감성으로 꾸미고 싶어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해석이 그럴듯하다. 그렇게 바라보면 오늘도 열심히 일한 직장인에게 집순이는 필연적인 결과지 싶다.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집순이여도 괜찮다. 공표할 만한 취미 찾기에 애쓰지 말자. 취미가 없는 게 아니다. 집에서 TV보기도 명백한 취미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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