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12억 굼뜬 코끼리' 깨운 모디 노믹스

外人 직접투자 적극 유치… '세계의 공장' 화려한 변신

지난해 경제 성장률 7.3%… 16년만에 中 성장 앞질러


'메이크 인 인디아' 효과… 해외기업 잇단 진출에 소비심리도 활활

투명 행정으로 관료문화 개선… 고질적인 병폐 뇌물도 사라져

쇼핑몰·헬스클럽 등 인산인해… 고가 수입제품 선호현상 확산


#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사한 직후인 지난 2013년 7월. 인도 뭄바이의 풍광은 아시아 2위 경제대국의 경제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참했다. 자동차가 멈춰 서면 갓난아기를 들쳐 업은 여성이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했고 쓰레기로 이뤄진 산에서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당시 기자와 만난 대리운전기사 아쇼크 티라크(24)씨는 "물가가 올라 기름을 넣는 데 이전에는 58벅스(달러)였지만 이제는 75벅스나 든다"며 "주변에 일자리를 잃은 친구들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 2015년 12월12일에 다시 찾은 인도. 상황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행정수도 뉴델리로부터 남서쪽으로 24㎞ 떨어진 구르가온. 한국의 분당 격인 이곳에서는 한밤중인데도 불을 밝게 켠 공사현장에서 고층빌딩이 경쟁하듯 올라가고 있었다. 정원(3명)보다 많은 10여명의 인부들을 태운 바퀴 3개 달린 오토바이 부대는 고가도로, 도시 전철 건설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차가 멈춰도 구걸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인도 코끼리'가 '사자'로 변신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2년차(2014년 5월 취임)에 가라앉던 경기는 넘치는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었다. 인도를 상징하던 느릿느릿한 코끼리 대신 야성 넘치는 수사자를 캠페인 로고로 들고 나온 모디 총리는 인도의 아킬레스건인 규제혁파를 정책 1순위에 올렸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기치로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으로 키우겠다는 모디노믹스는 인도 경제를 깨웠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7.3%로 중국을 16년 만에 앞지를 것이 확실시된다.

미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자본 엑소더스 중에도 지난해 9월까지 전년 대비 18% 급증한 265억달러의 FDI를 받았다. 구글·페이스북·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잇달아 인도 진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델리 인근에서 식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알로크 쿠마르씨는 "모디 취임 이후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고 세계 모든 나라가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며 "인프라가 열악하고 기아를 겪던 인도를 잊으라"고 말했다.

고공행진을 하는 경제성장률과 물밀 듯이 밀려오는 외국인 투자에 소비심리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요일 밤 뉴델리 인근 구르가온에 있는 '사이버시티' 쇼핑몰은 인도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형형색색의 터번을 쓴 인도인들이 쏟아져나와 음료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클럽에서는 귓전을 때리는 음악이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컬러렌즈를 수입해 인도 안경점에서 판매하는 'O-렌즈' 인도법인의 이효근 대표는 "현지 안경점주들이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하라고 한다. 가격이 비싸지면 오히려 좋은 수입제품인 것처럼 알려져 더 잘 팔리기 때문"이라며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심리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벤츠·BMW 매장은 물론 람보르기니 매장도 속속 입점하고 있다"며 "쇼핑몰 사진을 페이스북 등에 올리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인도에 이렇게 좋은 쇼핑몰이 있느냐'며 놀란다"고 설명했다. 사이버시티 쇼핑몰로부터 차로 10분 거리인 MGF핑몰도 마찬가지였다. 옥상에 있는 카페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인도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바로 옆 헬스클럽에서도 터번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인도인들이 수십㎏이나 되는 덤벨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사실 지난 수십년간 다국적기업에 인도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말 안 듣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12억5,200만명(2013년, 세계은행 기준)에 달하는 인구(세계 2위), 구매력이 큰 젊은이들이 풍부한 나라(평균연령 26.1세, 2012년 기준), 값싼 노동력 등은 장점이었지만 외국 기업에 불리한 세법, 말이 통하지 않는 지방정부 행정체계 등이 걸림돌이었다. 영국의 '보다폰' 등 다국적기업들은 인도의 가능성을 보고 진출했다가 세금폭탄을 맞은 뒤 인도를 떠나곤 했다. 실제 지난 2012년 인도의 FDI는 228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34% 폭락했으며 2013년에도 220억달러로 3% 추가 하락했다.

그런 인도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신뢰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모디 총리는 2014년 9월 제조업 육성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들고 나오면서 "효율적이고 쉬운 행정을 하겠다. 투자를 방해하는 관료주의적 규제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불투명한 세법, 복잡다단한 규제 등이 최대 약점인 점을 인식한 조치였다. 고질적 병폐인 뇌물문화를 없애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국영은행 수장(신디케이트은행 수디르 쿠마르 제인 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실제 뇌물 문제도 사라지는 추세다. 인도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인은 "인도에 처음 왔을 때 공항에서 입국하다 보면 큰 보따리를 든 인도인들이 묵직한 돈뭉치를 세관 직원에게 건네는 것을 매번 봤다"며 "하지만 모디 취임 이후 그런 광경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특유의 관료주의 문화도 개선되고 있다. KOTRA 뉴델리무역관의 김성재 한국수출인큐베이터 소장은 "1년에 한 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데 언제나 세 번은 센터를 방문해야 발급받을 수 있었다"며 "최근에도 '세 번은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1시간 만에 비자가 발급됐다"고 말했다.

/뉴델리=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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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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