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찾아간 멕시코시티 중심가 '리버풀' 백화점의 삼성전자 매장에는 신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 북적거렸다. 멕시코의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삼성ㆍLG전자, 기아자동차 등 한국산 브랜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 멕시코 법인 관계자는 "삼성ㆍLG 브랜드 선호도는 65~70%에 이른다"며 "삼성은 휴대폰 시장에서 점유율 40%로 애플을 앞질렀고 일본 제품은 TV 분야에서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최고급 백화점인 '팔라시오 데 히에로'의 전자제품 코너 중심에는 연간 200만달러의 임대료를 제시한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가 공짜로 매장을 받아 자리 잡고 있을 정도였다.
이 매장의 호세 토마스 매니저는 "기술력, 사용 편리성, 서비스 등에 두루 걸쳐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갤럭시 휴대폰 판매량이 애플 아이폰의 3배에 달하는 바람에 전시 재고까지 동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역시 프리미엄 스마트 폰 'G4', 초고화질 TV, 고효율 에어컨, 프리미엄 가전을 앞세워 멕시코 시장에서 선전 중이다.
대(對)멕시코 수출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1~11월 한국의 대 멕시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경기 둔화에 시달리는 중남미 지역 전체 수출이 12.4% 급감한 것에 비해서는 선방한 셈이다.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높은데다 멕시코 중산층 증가로 내수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아차 멕시코 법인장은 "지난해 멕시코 신차 판매는 전년 대비 19% 성장했고 올해는 자동차 구입 때 소득공제 혜택 확대로 전망이 더 밝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멕시코의 성장률이 2.8%로 브라질(-1.0%), 아르헨티나(-0.7%), 베네수엘라(-0.6%) 등 다른 중남미 경제 대국보다 사정이 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원자재 가격 하락, 재정 및 경상적자 증가와 통화 긴축 등 악재가 많지만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다 경제 의존도가 90%에 이르는 미국 경기 회복 덕분이다.
김건영 KOTRA 중남미 지역 본부장은 "멕시코가 과거 전쟁으로 영토를 뺏기는 등 미국에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은 왜 멀리 계시고 미국은 왜 가까이 있습니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이제는 미국 이민자의 본국 송금이 증가하는 등 미 경기 회복의 과실을 멕시코도 맛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멕시코의 전략적 가치는 내수 시장보다는 수출 전진기지라는 측면에서 나온다.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와 세계 5위의 제조업 경쟁력, 정부의 에너지ㆍ교통ㆍ수도ㆍ관광 등 인프라 확대, 민간 투자 활성화, 에너지ㆍ전력 분야의 독점 철폐 등에 힘입어 중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제조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태평양동맹,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45개국과 거미줄처럼 FTA를 맺고 있다는 게 강점이다. 'FTA 허브'인 멕시코에 공장을 세운 뒤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수출하면 무관세 등 여러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수출의 상당수도 평판디스플레이·자동차부품·강판 등 부품이나 반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가 일종의 우회 수출로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 멕시코 외국인직접투자(FDI)도 2012년 1억2,910억달러에서 2015년 3억2,300만달러(8월 말 현재)로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티후아나 공장과 LG전자의 레이노사 생산기지, 올 상반기 가동되는 기아차 몬테레이 공장 등이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멕시코 진출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장기 성장률이 낮아 내수 시장이 폭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병문 멕시코 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중국의 임금 상승, FTA 등으로 제조업 공장 설립에는 매력이 있지만 빈부 격차 등으로 현지 구매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 페소화 평가절하 지속과 외국인 자본 유출도 단기 위험 요인이다. 통화가치가 더 떨어지면 소비 위축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데다 기계 부품 등의 수입 가격이 올라가면서 현지 공장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또 근로자 중심의 법률 체계와 높은 법인세율, 불투명한 행정과 관료주의, 수입 규제와 비관세 장벽 등도 현지 진출 기업의 애로 요인이다. /멕시코시티=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