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악마인가 자유경제의 화신인가, '꿀벌의 우화' 맨더빌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 네덜란드 출신(1670년 1월 19일생) 영국 의사다. 언제 영국에 왔는지는 불분명하다. 명문 레이던 대학에서 의학·철학 박사학위를 잇따라 받은 직후 유럽 여행 길에 오른 게 1691년. 영국에서는 1693년 면허 없이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소환됐다는 게 첫 기록이다.

명예혁명(1688) 이후 영국에 불어닥친 ‘네덜란드 바람’을 타고 런던에 자리 잡은 그는 바로 솜씨 좋은 의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국인들도 그를 외국인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30세 무렵부터 짧은 우화(寓話)집을 발표하며 문필가로도 이름을 알렸다.(우연인지 당시에는 경제학에 이름을 남긴 의사가 여럿 나왔다. 통계학의 지평을 연 윌리엄 페티(1623~1687)는 군의관 겸 해부학자였고 ‘경제표’를 만든 프랑수와 케네(1694~1774)는 솜씨가 좋아 궁정의로도 뽑혔다. ‘정부론’을 쓴 존 로크(1632~1704)도 유능한 의사였다)


서른다섯이던 1705년 그는 모든 저작 가운데 가장 문제작으로 꼽히는 ‘투덜대는 벌집: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을 써냈다. ‘악덕이 사라지면 잘살던 사회가 무너진다’는 특유의 명제를 처음 등장시킨 이 우화집은 ‘개인의 탐욕이 있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옛날 벌의 왕국이 있었지/왕과 귀족은 사치를 일삼고/…판결은 뇌물로 결정됐다네/어느 날…벌들은 뉘우쳤지/…정직하게 살다 보니/재판도, 군인과 요리사며 일자리까지 모두 없어지고 말았지/…벌들은 굶어죽었다네’

동양으로 친다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 감인 이 우화집은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맨더빌은 잇따라 개정판을 내고 새로운 우화와 주석집을 추가하며 ‘가난한 자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자선보다 고용을 유발하는 사치가 훨씬 낫다’는 자극적인 내용도 넣었다. 반향을 일으킨 것은 재판 덕분. 미들섹스 법원에 의해 1723년 ‘공적 불법방해’라는 판결을 받은 뒤 책도 맨더빌도 유명해졌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누린 셈이다.

과격한 내용은 반대 세력을 낳았다. 맨더빌을 괴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Mandeville’이라는 이름 때문에 ‘인간 악마’(Man-Devil)라고 불린 그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굴하지 않고 주석을 덧붙이고 내용을 보강해 책을 가다듬었다. 그 결정판이 1723년 나온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라는 개정판. 우화집을 처음 펴낸 시점으로부터 본다면 약 20년 동안 수정작업의 누적물이 바로 ‘꿀벌의 우화’다.

맨더빌은 무수한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장 닮은 꼴은 목사님이자 최초의 정치경제학 교수 타이틀(동인도회사 대학교. 애덤 스미스도 경제학이 아니라 ‘도덕철학’교수였다)을 갖고 있는 토머스 맬서스.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빈민촌에 불결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던 맬서스의 주장은 ‘노동자들의 근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급여를 많이 주거나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는 맨더빌의 복사판 격이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서툰 사람들이 맨더빌에 쉽게 빠져 든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 ‘아침에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제과점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국부론 구절은 맨더빌의 연장선이다. 마르크스도 ‘부르주아를 은근히 옹호하는 속물보다 맨더빌이 차라리 용맹하고 정직하다’고 언급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까지 맨더빌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사이몬 패튼 미 펜실베이니아대교수는 ‘영국 사상사(1899)’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맨더빌이 낸 문제를 풀다가 경제를 공부하던 데이비드 흄은 철학자가 되었으며, 철학을 공부하던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가 됐다.”


와카다메 마사즈미(若田部昌澄) 와세다대 교수는 ‘불황에서 나라를 건진 경제학자들의 투쟁(2003)’에서 300여년 전에 이기심의 순기능을 거론했다는 점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기에 맨더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기심이나 사치 같은 ‘악덕’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악덕’이 있기 때문에 사회에는 일정한 ‘질서’가 생긴다는 점을 발견한 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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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맨더빌에 대한 평가 자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들이 나오고 있다. 자유방임주의, 정글 자본주의의 이론적 창시자가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중시했다는 해석도 있다. 1723년판 ‘꿀벌의 우화’에 추가된 우화인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의 끝 문장만 본다면 분명 그렇다. ‘개인의 악덕은 솜씨 좋은 정치인이 잘 다룬다면 사회의 이득이 될 수 있다.’

기업의 힘이 커진 상황에서 개인의 악덕을 솜씨 있게 다룰 정치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해 보이는 사실은 하나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고 있는 라구람 라잔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이코노미스트 시절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난 몇해 동안 세계 경제는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맨더빌의 벌집을.”/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다소 긴 사족

1705년 처음 선보인 ‘투덜대는 벌집’은 짧은 편이다. 영어 원문의 분량이 433행. 그러나 쉽지 않다. 중세 영어가 섞이고 도치와 축약으로 뒤죽박죽인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성인군자인 척하며 가난한 자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자선을 베풀기보다 고용을 유발하는 사치가 훨씬 낫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18세기 초 논란 속에 반짝 눈길을 끌었다가 20세기 들어 다시 조명받은 맨더빌에 대한 국내 연구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유일한 완역자인 최윤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을 내놓은 것도 최근(2014년)이다.

번역본 말미에 소개된 최 교수의 해제에 따르면 맨더빌은 전통 경제학은 물론 미국의 제도학파, 케인스의 수정주의와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학, 사회학, 심지어 진화론에까지 골고루 영향을 미쳤다. 이뿐 아니다. 데이비드 흄과 조지 버클리(아일랜드 경험주의 철학자·성공회 주교), 프랜시스 허치슨(스코틀랜드 철학자·애덤 스미스의 스승), 드니 디드로(프랑스 ‘백과전서’ 편찬자), 장 자크 루소, 토머스 맬서스, 제임스 밀(영국 철학자·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이마누엘 칸트, 애덤 스미스, 샤를 몽테스키외, 제러미 벤담을 포함한 25명이 맨더빌의 영향을 받았다.

‘경제학은 음울한 학문’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맨더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더빌의 생각을 계승한 탓인지 목사이면서도 ‘괴물(Monster)’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은 토마스 칼라일은 ‘차티즘(1839)’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경제학은 음울하다(dismal)’는 평가를 내렸다. (칼라일은 이 밖에도 명구를 여럿 남겼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와 ‘침묵은 영원처럼 깊고 말은 시간처럼 짧다’는 명구의 원저작권도 칼라일에 있다)

맨더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18세기 초반 부유층이 주도한 ‘도덕운동’을 반영했다는 해석도 있다. 명예혁명와 해외 진출 등 급격한 사회 변혁으로 무너져 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신분 질서를 회복하려던 ‘가진 자들이 주도하는 도덕회복운동’과 맨더빌이 강조한 ‘가진 자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무수한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준 맨더빌은 실제 삶에서도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주업인 의사 이외에도 저술가로 활동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도 관여했고 네덜라드어와 영어 이외에도 프랑스어,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14세기 유명 여행가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맨더빌이라는 성 때문이다. 노르만계 프랑스인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며 터키와 러시아·인도·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여행한 뒤에 출간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맨더빌 여행기(1371)’의 저자로 유명한 요한 맨더빌(Jehan de Mandeville)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가 확실치 않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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