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50> 진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요즘 ‘혼자’서 뭘 할까에 대한 고민이 콘텐츠로 잘 팔린대.” 출판업계에 있는 지인한테 들은 말이다. 서점에 가 보면 스스로 무엇인가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결심, 혼자서 밥을 먹거나 여가를 보낼 때 얻을 수 있는 효용 등과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현대인은 많은 관계에 지쳤다. 이유 없이 수 천 개의 전화번호를 관리하고, 하루에도 수 십 개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와 문자 메시지를 처리하는데 급급하다. 소통을 넘어 수용 한계를 넘어선 공해 수준이다. ‘관계의 늪’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끔 혼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게 필요하긴 하다.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막상 내 삶에 대입해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혼자서’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밥은 혼자서 먹는가? 당장 핸드폰 속 메모들만 보더라도 오만가지 약속으로 들어 차 있다. 쉽게 깨거나 시간을 미루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하나하나가 내게 정말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본 적이 있는데, 극중 주인공처럼 혼자서 맛집에서 무엇인가를 음미할 자신도 별로 없다. 그냥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거라면 배달 음식도 있고, 가까운 편의점에서 요깃거리를 사서 사무실에서 먹으면 된다. 어딘가 이름난 음식점에 간다는 것은, 그 맛과 분위기를 함께 소비할 만한 사람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그렇게 부호화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곱씹을수록 ‘혼자’라는 키워드에 동의하는 게 힘들다. 혼자도 결국은 관계라는 또 다른 대척점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삶의 한 단면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커진다.


옛날 우리 사대부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때 난을 치거나,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는 등 소일거리 패턴이 정해져 있었다. 명문 사대부 가문의 가장이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는 부인이나 지인들도 방해하지 않았다. 사랑채 밖에서 ‘안에 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적정 거리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적정 물리적 거리와 여유가 동반되어야 하는 듯 하다. 어디 그뿐인가. 사대부들은 혼자서도 무엇인가에 오염되지 않도록 독야청청하는 자세가 요구되었다. 그것을 가리켜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홀로 있는 시간에도 누군가가 쳐다본다는 느낌을 갖고 조심하고 자제하라는 뜻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오롯이 보내기 위한 일종의 규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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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생각해 봤다. 어쩌면 우리는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적당히 도피하고 있기 위해 ‘혼자’가 되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현대 사회의 특성 상 강한 네트워크는 개인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것을 반대한답시고 ‘골방’에 틀어박히는 것을 옹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서 여행가는 트렌드가 지나치다 보면 훗날 관계에 대한 건강한 고민과 대화의 미덕마저 앗아가는 사회 풍토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막연히 ‘혼자 트렌드’를 방조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진짜 혼자가 된다는 것은, 독립된 자아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만한 공간을 주는 것이지, 혼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행태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외로움’ 또는 ‘홀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이 조금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렇잖아도 팍팍한 세상인데, 더 각박해지지는 않을까 하고.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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