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파충류의 뇌


새해 계획은 원대할수록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법. 굳이 핑계를 대자면 올해 한국 경제는 첫걸음부터 중국에 혼이 쏙 빠지게 휘둘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총선의 계절이 시작됐다. 결국 올해는 위기를 틀어막고 포퓰리즘을 달래면서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1967년 미국의 폴 매클린 박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3층으로 나뉜다. 가장 안쪽은 '파충류의 뇌'다. 호흡·심장박동 등 생명 유지를 맡는다. 중간층은 '포유류의 뇌'다. 좋고 싫은 감정을 느낀다. 바깥층은 '사람의 뇌'로 기획하고 판단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셋은 각자 역할을 하며 상호작용도 한다.

새해 벽두부터 금융 시장은 '파충류의 뇌'를 풀가동했다. 중국의 급격한 위안화 절하와 주가 폭락으로 국제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마치 원시시대에 맹수를 보고 도망치듯 공포가 시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놀란 가슴은 쓸어내렸지만 올해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금리 인상, 저유가 등 초대형 악재가 계속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을 백분 발휘해야 한다.

선거 바람이 불면서 '포유류의 뇌'는 서서히 바빠지고 있다. 집단생활에서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이 바로 '포유류의 뇌'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린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이곳을 자극한다. '진실한 사람' '심판론' 모두 결국 감정에 호소하는 것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위기를 진화하는 것도, 나랏일 할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그 와중에 또다시 잊히는 다음 세대의 미래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정체된 한국 기업을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새로운 먹거리 후보는 많지만 대표 선수를 키우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모두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의 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사람의 뇌' 역할을 앞장서 해줘야 할 경제팀을 보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새로 취임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의 일관된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방향 아닌 방향을 제시했다. 모난 것 없는 그의 말에서는 철학도, 색깔도 읽어낼 수 없다. 그나마 내걸었던 구조개혁은 4대 개혁의 핵심이자 치적이던 노동개혁부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첫 경제팀 인선에 실패해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두 번째 경제팀은 재정과 통화정책 카드를 알뜰하게 다 써먹었다. 마지막이 될 유일호 경제팀에 좀 더 치밀한 전략, 대담한 추진력을 기대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유일호 경제팀의 성적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진화하느냐 퇴행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이연선 경제부 차장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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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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