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앉아서 접수만 하는 복지행정 시대는 갔다


서른 한 살 청년이 있었다. 초점 없는 눈에 머리는 언제 잘랐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집은 전기·수도·가스가 끊어진 지 오래고 반찬도 없이 밥만 지어먹고 살았다.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은둔형 외톨이로 남았던 청년은 동 주민센터 '맞춤형복지 전담팀'의 정성어린 방문과 지속적인 개입으로 새 삶을 찾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동차 정비전문가를 꿈꾸며 관련학과 대학 합격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읍면동 복지허브화' 시범사업을 통해 지원한, 참으로 뿌듯한 이야기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일선에서 이렇게만 일해 준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읍면동 평균 4명의 복지 공무원이 1인당 관리하는 기초수급자만 97명, 각종 복지급여 대상자는 854명이다. 360가지 중앙부처 사업에 대한 안내와 복지신청 처리에 버거워 수급자도 찾아가 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위기가 '의심되는' 주민을 방문하거나 민원인이 신청한 것 이상의 복지서비스를 가구별 맞춤형으로 통합 제공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문제는 복지공무원이 신청·접수만 처리해서는 복지제도가 아무리 발전해도 국민이 체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식당이 손님을 만족시키려면 요리도 중요하지만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가는 시스템, 종업원의 태도, 요리를 담는 그릇도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2016년 복지부 업무보고의 핵심내용은 읍면동별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맞춤형복지' 전담팀을 설치하고 이들로 하여금 맞춤형 통합서비스만 전담해 수행하도록 하는 읍면동 복지허브화다. 지난해 맞춤형 급여의 도입으로 맞춤형 복지제도의 뼈대를 완성했다면 올해는 이를 내실화하고 국민들이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읍면동 복지허브화는 15개 지역에서 1년6개월간 시범운영한 결과 사각지대 발굴은 6배, 방문상담은 4배, 서비스 연계는 3배 향상되는 성과가 있었다. 이에 올해 700개소 읍면동을 시작으로 오는 2018년까지 시범사업 결과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 중인 복지인력 6,000명 확충분을 우선 활용하고 지방자치단체 내부 업무조정으로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맞춤형복지 전담팀을 설치한 읍면동은 주민이 잘 알 수 있도록 시군구와 의논해 '주민복지센터(가칭)'로 읍면동의 명칭도 변경할 예정이다. 읍면동의 중심이 일반행정에서 복지행정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읍면동 복지허브화가 구현되면 광주광역시 우산동의 청년처럼 읍면동에 오지 않는 사람도 복지공무원이 먼저 찾아 나서게 된다. 청년은 긴급복지제도를 통한 전기·수도·가스 요금 및 임대료 지원, 정신과 심리치료, 민간자원 연계를 통한 건강보험료 및 전화요금 지원, 자살고위험군 관리를 위한 멘토 연결, 직업훈련 및 지속적인 상담 등 그에게 필요한 지원을 통합 제공 받았다. 맞춤형복지 전담팀이 제공하고자 하는 통합서비스가 이런 것이다. 각 가구가 처한 어려움을 세세히 살펴보고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총동원해 위기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꼭 필요하지만 인력 투입과 조직구성만으로는 쉽지 않은 과제다.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지경력자 읍면동장 목표제' 등을 통해 복지업무와 인식이 있는 읍면동장을 확대한다. 일선 복지공무원이 해당 업무에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사례관리 분야 등 전문직위제 활성화도 더불어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들에게 최접점 행정기관인 읍면동은 국가의 얼굴이다. 읍면동 복지허브화를 통해 일선 복지기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국민들이 기댈 수 있는 국가의 모습이 각인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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