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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프로그램 폐기로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통해 서방과의 경제협력 재개에 나선다. 서방 기업들도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중동의 양대 축을 이루는 이란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어서 제조·인프라 부문의 대규모 경협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25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바티칸·프랑스 등을 순방한다. 이란 대통령의 유럽행은 지난 1999년 10월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후 17년여 만이다.
이번 로하니 대통령 순방의 키워드는 '경제협력'이다. 방문단도 이란 경제계 대표단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방문지에서도 각국 수반을 제외하면 재계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순방의 하이라이트는 유럽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와의 항공기 구매계약이다. 아바스 아쿤디 이란 교통장관은 이날 테헤란에서 열린 항공 관련 컨퍼런스에서 "로하니 대통령이 27일부터 시작되는 프랑스 파리 방문기간에 에어버스 114대를 구매하는 계약에 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현재 500대가량(중장거리용 400대·단거리용 100대)의 항공기 구매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쿤디 장관은 "이란이 보유한 항공기 250기 가운데 운항 가능한 것이 150대에 불과해 항공기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며 "총 500대의 구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 재무부가 보잉과의 계약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보잉과의 구매협상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스가르 파크리흐 카샨 부장관은 로이터통신에 "보잉에서 100대 이상을 구매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항공사들도 이란 취항을 서두르고 있다. WSJ는 몇몇 서방 항공사들이 이란과의 경제협력 재개시 운항수요가 늘 것을 대비해 취항 서비스 개시를 준비 중에 있다면서 덴마크 에어라인과 에어프랑스, 브리티시 에어웨이 등을 사례로 들었다. 현재 시리아 등 주변국들이 내전에 휩싸여 있는 점도 서방 항공사들이 이란 취항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다. 이란 취항이 허용될 경우 지금까지 중동을 우회하던 항공기들의 운항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이란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공항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특히 2억5,000만달러를 들여 항공관제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어서 이 사업을 어느 기업이 따낼지에도 관심이 쏠려 있다.
항공 분야뿐 아니라 이탈리아 에너지 업체 네니, 프랑스 자동차 업체 푸조와 르노도 이란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은 또 유럽으로부터 약 50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에 대한 외국인직접투가는 2012년 7월 경제제재 돌입 이후 크게 감소해 2014년 이후에는 사실상 '0'에 가까운 상태다.
다만 이란의 경제재건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액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통산 이란의 재정 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이 비중이 25%로 떨어지고 대신 세수 비중이 68%에 달했다. 정부의 구매력이 저하된 상태여서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정부 구매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