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91년 걸프전·2005년 허리케인·아랍의 봄 등 'OPEC 대항마' IEA 요청따라 세차례 방출

■ 저유가시대 석유 비축 딜레마

전략비축유 국제적 활용 사례

지진도 끄덕없는 울산 지하석유비축기지<YONHAP NO-0221>
지난 2010년 완공된 한국석유공사 울산 석유비축기지./=연합뉴스


전략비축유는 말 그대로 비상시에 대비해 미리 석유를 사서 저장해두는 것이다. 전략비축유의 활용법은 정부 고시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태풍 등 천재지변, 선적 차질 등으로 인한 수송 지연, 전쟁 등으로 원유 도입이 원활지 않을 때만 비축유를 정유사에 대여할 수 있다. 상업적 재고가 아닌 만큼 상업적 거래는 일절 허용되지 않고 원유 도입에 문제가 생기는 비상 상황에만 대여가 가능하다. 단순히 유가 급등으로 석유 수입에 따른 부담이 크다고 정유사들이 비축유를 빌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정유사들은 빌린 물량을 최대 2개월 이내에 갚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석유파동 이듬해인 지난 1979년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되면서부터 전략비축유를 쌓아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축은 2001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대항 국제기구인 IEA는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회원국에 90일분의 비축시설 및 재고 확보를 권고할 뿐만 아니라 전략비축유 방출 요청권을 보유하고 있다. 각국이 제 맘대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IEA가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방출하자고 결의하면 각국이 보유한 재고 원유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회원국이 비슷한 시기에 비축된 원유를 한꺼번에 내놓아야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제공제로 각국이 보유한 전략비축유는 세 번 방출됐다. 1991년 걸프전 발발 때,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석유정제시설을 강타한 2005년, '중동의 봄'이 한창인 2011년 등이다.

가장 최근 방출된 사례는 2011년 6월24일. 리비아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아랍의 봄)로 주 원유 수송로인 수에즈운하가 막히고 시위 물결이 산유국으로 옮겨붙을 조짐을 보이자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국제유가 가격 안정을 위해 1974년 주요 원유 수입국끼리 손을 잡은 IEA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6,000만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전격 결정했다. 당시 미국이 가장 많은 3,000만배럴을 풀기로 했다. 한국도 346만배럴을 방출하면서 국제공조 대열에 합류했다.

한꺼번에 막대한 원유가 시장에 쏟아지자 국제유가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전략비축유 방출 소식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4.39달러(4.6%) 급락한 배럴당 91.02달러로 마감하면서 4개월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005년 9월2일 방출 때도 효과는 발휘됐다.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석유 생산시설이 밀집한 멕시코만을 강타하면서 IEA는 6,000만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다. 당시 WTI는 2.7% 급락한 배럴당 67.57달러에 장을 마쳤다. 한국은 당시 비축량 7,650만배럴의 3.8% 수준인 288만배럴을 민간에 풀었다. IEA 전체 방출물량의 4.3%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략비축유 방출만으로는 국제유가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비축원유를 무한정 풀 수도 없을뿐더러 수급 불균형을 한 방에 해결하지 못한다"며 "다만 국제석유시장에 과도한 쏠림현상을 막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데는 주효하다"고 설명했다. 세종=이상훈·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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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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