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 항공우주분야 도약 원년으로

KF-X·발사체 개발, 달탐사 시동… 기한·예산 등 개발환경 녹록잖아

전문가 믿고 권한 대폭 이양… 결실 위한 '인내의 미학' 발휘를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원래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수양뿐 아니라 기술을 익히고 사업을 이루는 데도 인용된다. 대한민국 항공우주 분야에서 기술개발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시간과 예산은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절차탁마할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사업이 좌초되거나 부실하게 마무리될 우려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이 계약됐고 지난 21일 '체계개발착수회의'를 통해 KF-X 개발이 시작됐다. KF-X는 노후한 공군의 대체전투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10년5개월 동안 개발비 8조5,000억원, 이후 120대의 양산비용 9조6,000억원 등 총 18조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단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 사업으로 불린다. 인도네시아도 개발비의 20%를 부담하고 공동 참여한다. KF-X 개발은 가격 기준 국산화율 65%가 목표다. 하지만 시작부터 어렵다. 올해 KF-X 사업 예산이 당초 방위사업청에서 요청한 1,618억원에서 670억원으로 대폭 삭감된 상태다. 개발기간을 단축하려면 남보다 우수한 기술력과 넉넉한 예산, 그리고 투입인력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언제나 그랬다.

나로호 이후 독자적인 발사체를 개발하려는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뉴스에 나온다. 정쟁 대상으로 번져 한때 어려움에 처했던 달 탐사사업도 예산의 일부 추가확보를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맞은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마치 올 한해가 대한민국 항공우주 분야 도약의 원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장밋빛은 아니며 경제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예산확보 문제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명품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탄생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는 '무릎꿇은나무'의 사례를 보자. 로키 산맥의 해발 3,000m 수목한계선 지대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묘한 형상의 나무가 자라는데 오랜 시간 칼날 같은 추위와 강풍을 이겨내고 자란 덕분에 무릎꿇은나무는 공명이 잘되는 최고의 바이올린 재료가 된다고 한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며 나이테가 만들어내는 깊고 고운 공명의 소리로 수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개인이나 기관·국가도 이런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나로호 발사를 통해 우리나라도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을 이룬 사례가 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고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알게 됐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과 예산 내에서 사업과 기술 개발을 보다 쉽게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절차탁마가 필요하지만 무한정의 인내심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술 개발과 사업 성공이라는 명제를 달성하려면 혼자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협력 파트너의 도움을 최대한 받을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주관기관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문제는 대규모 국책개발 사업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다.

대형 국책개발 사업일수록 비효율적으로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아마도 권한과 책임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책임과 권한의 한계를 고민하면서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재량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를 믿고 권한을 대폭 이양하자. 다만 그 권한을 남용할 경우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겠다. 대규모 국책사업에는 비리가 개입될 개연성이 높다. 정부도 비리에 대한 여러 대비책을 가진 것으로 안다. 기왕에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니 믿음으로 응원하자. KF-X와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명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서울경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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