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내수산업 콤플렉스


지난 2003년 무렵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직원 A씨는 묘한 전화를 받았다. "파워포인트라는 제품 어디서 살 수 있나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상품을 국내 업체에 묻는 상황이니 수신자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반전은 남았다. 발신자는 정보통신부 공무원이었다. 당시 갓 입각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직접 공개 브리핑 등을 하고는 하자 관료들까지도 뒤늦게 파워포인트 공부에 나선 것이다. 지금 보면 컴맹 취급 당할 일이다. 그러나 신기술에 익숙지 않던 당시 공무원들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성공적인 정보통신정책을 짰다는 데 더 큰 반전의 묘미가 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선수로 실기 능력은 떨어질지언정 감독으로의 통찰력과 리더십은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정책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방송통신산업은 세계 최정상의 기술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위세에 비해 아직 해외 매출 규모는 미미하다. 해외 성과가 미진하다 보니 방송통신업체들의 경쟁은 자연스레 내수 점유율 싸움에 집중됐다.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안방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열등의식인 '내수산업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국내 업계도 절감하고 있다.

마침 비슷한 열등감을 가진 서비스 산업이 있다. 금융업이다. 지난 10여년간 금융계에서도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어야 한다' '초거대 투자은행인 메가뱅크를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금융업과의 공통점을 비교해 문제점을 푼다면 방송통신산업은 내수산업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규제산업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사업면허부터 시작해 서비스 가격, 원재료(주파수·통화 등) 공급 등의 결정 권한이 정부에 귀속돼 있다. 기간산업의 특성상 해외 자본의 진입 문턱도 높다. 생활 필수 산업임에도 전문성이 높아 상품 용어와 가격체계가 난해하다. 이런 시장구조는 자연스럽게 일부 메이저 업체들이 정부의 관치와 보호막에 기대 적당히 시장을 나눠 먹으며 안주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하기 쉽다.

국내 대형 은행들은 이런 풍토 때문에 종종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장사를 해왔다는 쓴소리를 듣고는 했다. 우연인지 얼마 전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통신업계에 대해 똑같은 고언을 했다. 결국 정통부의 명맥을 이은 미래창조과학부는 또다시 감독으로의 자질을 발휘할 시험대에 섰다. 13년 전 진 장관의 정통부가 한국의 방송통신 업계를 훌륭한 내셔널리그팀으로 키웠다면 최양희 장관이 이끄는 미래부는 월드리그 챔피언팀으로 키우는 대업을 이뤄야 한다. 시장 규제가 과도해 되레 과점 보호막으로 변질한 것은 아닌지 살펴 기업들이 관치에 기대 안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난해한 상품구조가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권을 저해하는지도 살펴보자. 은행권이 메가뱅크를 추진했듯 글로벌 공룡 기업들과 상대할 만한 자본·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플레이어를 육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렇게 '줄탁'할 때 방송통신산업은 내수라는 껍질을 깨고 비상할 것이다.

/민병권 정보산업부 차장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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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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