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소공인 살리자] 규제에 노후공장 개조 '별따기'… 소공인 "사업확장 꿈도 못꿔요"

1부.기로에 선 소공인 <2>열악한 산업 생태계

소공인 기획21
서울 문래동에 몰려 있는 소공인사업장의 지붕에 비를 막기 위한 천막이 어지럽게 덮여 있다. 문래동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묶여 있어 열악한 시설을 개선하려 해도 개축이나 증축이 어렵다. /권욱기자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미관 이유로 공사 제한

사업 키우려면 지방으로 공장 옮겨가야할 판

원청업체와 무자료 거래 관행도 '성장 걸림돌'

시설·환경·금융 지원… 집적효과 극대화 필요


서울 문래동에서 금속기계 가공을 하고 있는 정두인 삼덕특수기어 대표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증축을 통해 공장 외관을 개선하기로 했다. 필요한 행정 절차를 밟아가던 정 대표는 돌발변수를 만났다. 영등포구청으로부터 공장을 개조하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지난 2013년 서울시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문래동 일대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돼 공장의 증축과 개조가 제한됐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도시활성화과 담당자는 "공장만 모여 있는 산업단지의 개념과 달리 주거지역과 공장이 혼재된 준공업지역이 서울시 내에 많아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라며 "도시의 주거 기능을 높이면서도 낙후된 공장 시설은 새롭게 정비해 정착을 희망하는 소공인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에서는 큰 방향을 세워놓았고 사업 시행 과정에서 소공인들의 공장 증축이나 이주 문제는 구청과 해당 지역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업 시행자가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시행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 대표처럼 공장 증축 과정에서 제지를 당하는 소공인들이 속속 나오면서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도심의 노후화된 공업지역을 재생시키겠다는 것이 시 당국의 청사진이지만 현장에서는 미관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소공인들이 사업을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지역 구청에서는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 재정착시킨다는 계획인데 소공인들은 새로운 공장이 지어질 때까지 작업공간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게다가 새 공장에 입주한다고 하더라도 임대료가 상승할 수밖에 없어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정 대표는 "사업이 커지면서 직원을 더 채용하고 싶지만 낡은 공장 외관이나 열악한 근무환경을 본 젊은이들이 발길을 돌려버린다"며 "다층 건물로 개조하고 외관 벽도 새로 만들려고 했지만 법으로 금지돼 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업을 키워 규모를 늘리려고 하면 집적단지를 떠나 지방으로 둥지를 옮겨가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후진적인 행정체계까지 가세하면서 소공인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곽의택 문래소공인지원센터장은 "도시가 발전하면서 외관을 다듬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술 하나만 갖고 도시의 한 켠을 지키며 살아온 소공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책은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시에서 쫓겨나 외곽으로 흩어지면 집적 효과가 사라져 기술 간 협업이 불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해당 산업이 도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낙후된 행정체계뿐만 아니라 원청업체와의 무자료 거래 관행도 성장의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등록 사업자가 많아 납품 과정에서 원청업체 측의 계약불이행과 일방적인 업체 변경, 납품단가 인하 등의 불이익을 당해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소공인들이 납품조건이나 대금결제 날짜 등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못할뿐더러 구두계약도 많아 불이익을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소공인 김모씨는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했다가는 유통사나 벤더사에 밉보여 일감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며 "원하는 임가공비와 대금결제 방식·날짜 등을 제시하는 건 꿈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중간 유통사 사이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악용해 소공인에게 턱없이 낮은 임가공비를 지불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지난해 3월 유명 홈쇼핑 브랜드에서 판매된 16만원짜리 수제화를 만든 한 소공인의 경우 임가공비로 2,500원밖에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소공인 생태계는 지난해 5월 도시형소공인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전국 24개 집적지별로 소공인특화지원센터가 문을 열어 생태계 복원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낮기만 하다. 각 센터의 행정업무를 책임지는 센터장에게는 센터를 운영할 인건비와 활동비 명목으로 연간 약 1억2,000만원이 지급된다. 이들에게 권한과 예산은 주어지지만 적절한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부작용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 한 소공인은 "센터장에게 인건비와 활동비가 지급되면서 대외활동은 늘어나지만 상대적으로 현장 산업의 애로사항이나 문제점에는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부 예산이다 보니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꼭 필요로 하는 인프라에 직접 사용되기보다는 환경개선사업 등 시급하지 않은 일에 치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경험을 갖춘 관리자들이 함께 센터에 상주해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윤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적지를 중심으로 금융·환경개선·공동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협업화를 유도함으로써 집적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주연·강광우기자

nice89@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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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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