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NTERVIEW] 박은관 시몬느 회장

"패션·봉제 산업에도 아직 창업 기회 있어 자체 브랜드 '0914’ 천천히 강하게 키우겠다”


시몬느는 도나카란뉴욕, 마이클코어스, 랄프로렌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핸드백을 만든다. 시몬느가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만든 핸드백은 미국 시장의 30%, 세계 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다. 사실상 세계 최대 명품 핸드백 제조 회사란 얘기다. 그런 시몬느를 이끄는 박은관 회장은 청년 창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패션 · 봉제 산업 분야에 아직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가운 겨울 바람이 불던 2015년 12월 중순,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에 있는 시몬느 본사를 찾았다. 안양천과 맞닿은 시몬느 본사는 모던하고 감각적인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건물다웠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을 만나기 위해 건물로 들어선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양한 회화 작품과 조각이 실내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잘 꾸민 갤러리 같은 시몬느 본사를 둘러 본 뒤 박은관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지난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핸드백 제조 회사에서 일하다 회사를 차린 것이었다.

그와 핸드백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그는 1979년 대학을 졸업했다. 박 회장의 부친은 인천에서 조선소와 냉동창고, 원양어선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두 형들처럼 부친 사업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첫 사회생활을 밑바닥부터 해보고 싶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님께 ‘딱 3년만 다른 곳에서 일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취직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도 싶었죠. 당시는 쉽게 외국을 나갈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역회사에 들어가야 그나마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죠. 3년만 일할 생각에 일부러 중소 무역회사에 들어갔어요. 봉제 수출 무역 회사였는데 그 회사 주 아이템이 핸드백이었습니다.”

박 회장은 3년만 다니겠다고 약속한 직장에서 7년을 근무했다. 무엇보다 일이 신나고 재미 있었다. 일 년 만에 대리를 단 그는 4년 만에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했다. 그가 만 29세 때 일이었다.

그는 일 년 중 절반을 이탈리아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처음 가보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명품 가방을 만드는 가죽 공방과 원단 회사, 공장들을 다니며 ‘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커지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회사 해외 거래처 중 한 곳에서 생산 물량을 댈 테니 직접 회사를 차려보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박 회장은 말한다. “거래처 바이어가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창업을 권하더라고요. 저는 ‘못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는 창업할 생각이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장이 한 번 해보라며 격려를 했다. “아버님도 네 사업을 해 보라고 옆에서 거드셨어요. 그래서 시몬느를 차리게 된 거예요.”


패션 분야 창업 지원 펀드 준비 중
박 회장은 봉제 산업 분야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IT 분야에서만 유독 창업 열기가 느껴지는 지금, 그는 오히려 봉제 산업에 기회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창업했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때도 말리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 봉제산업은 끝났다고 하는데 너는 왜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어 막차 타려고 하느냐. 고생만 한다’고들 하셨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시몬느 창업식 때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지금 봉제 사업을 한다니까 걱정들이 많습니다. 선배들이 하던 대로 하청공장으로 운영하면 막차가 맞아요. 하지만 저는 조금 힘들더라도 우리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서 침목을 깔고 우리 철도를 놓으면 막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봉제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IT 분야 스타트업들은 기회는 많지만 경쟁이 치열합니다. 자기가 패션을 좋아하면 봉제사업분야도 재미 있을 수 있어요. 물론 지금은 재봉 기계 몇 대놓고 옷 만들어 수출을 해선 곤란합니다. 디자인, 마케팅, 금융을 전공한 세 사람이 뭉쳐야 합니다. 창의성, 회사 운영, 자금 조달 세 가지 축을 나눠서 맡아야 해요. 디자이너들이 혼자 창업해서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옷 잘만드는 것과 사업은 별개인데 그걸 구별하지 못해서죠.”

한국에서 배출되는 디자인 인력은 1년에 2만 4,000명에 이른다. 해외 톱 패션디자인 스쿨 졸업생 중 20~25%가 한국 학생이다. 당연히 공급이 수요를 상회한다. 박 회장은 말한다. “해외 패션디자인 학교를 졸업해도 글로벌디자이너 브랜드에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은 단순한 디자인 능력 외에 패션 전반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려고 해요.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작은 공방을 열어 자기 브랜드를 만들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생산은 경험 있는 작은 외주공장이나 장인들과 협업해서 하면 되는 겁니다. 최근 이런 식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이 꽤 나오고 있어요.”

젊은 창업자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부분은 자금이다. 박 회장은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한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키우기 위한 펀드를 늦어도 2~3년 내에 준비할 생각입니다. 업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조금씩 보이고 있고요. 지금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패션 사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비즈니스적으로 혹은 CSR 차원에서 젊은 디자이너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자체 브랜드 ‘0914’
그는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는 1987년 시몬느를 창업할 때 처음부터 생산 물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미국 톱디자이너 브랜드 ‘도나카란 뉴욕’을 거래처로 삼기로 했다. 그는 우선 미국 뉴욕에 있는 최고급 백화점에서 도나카란뉴욕 핸드백을 여섯 개 구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개발실 장인들과 함께 도나카란 뉴욕 핸드백을 분해한 뒤 제조 방법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탈리아에 가서 소재를 사와 똑같이 만들었어요. 그걸 들고 다시 뉴욕으로 날아갔죠.” 하지만 생각보다 문턱이 높았다.

박 회장은 말한다. “처음엔 저희가 만든 제품을 보고 나더니 좋다고 난리가 났어요. 당장 계약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미팅을 기분 좋게 끝내고 나서 다음날 다시 찾아갔죠.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럭셔리 핸드백은 ‘메이드 인 프랑스나 이탈리아 아니면 안 된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는 거였죠.” 전통이 없는 제조사는 받아줄 수 없다고 거절을 당한 것이었다. 박 회장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며칠 뒤 다시 그 회사를 찾아갔다. “고급 핸드백 수요는 느는데 이탈리아에 고급 핸드백을 만드는 장인들이 노령화돼서 10년 뒤엔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 자리에서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아시아 지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며, 도나카란뉴욕이 선구자가 되어 먼저 아시아 시장에 도전해 보라고 말했다. “전체 생산량의 1%만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반신반의하면서 제 요청을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는 핸드백 물량 120개를 받아들고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제품 품질과 서비스에 만족한 도나카란뉴욕에서 시몬느에 디자이너를 보냈다. 그는 하청업체가 제품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을 시몬느에 제안했다. 1988년 4월 일이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럭셔리 핸드백을 개발하고 제조한 첫회사가 된 순간이었어요. 그 이후부턴 여러 곳에서 시몬느를 알아주기 시작했죠.” 이후 시몬느는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케이트 스페이드 같은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거래처로 삼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그들에게 핸드백 제조 노하우가 없다는 점을 활용해 ‘협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박 회장은 말한다. “그들이 핸드백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시몬느와 함께 기획하고 만들었어요. 핸드백은 마진이 매우 높은 상품입니다. 시몬느는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 생산, 품질관리, 검수까지 일체 공정을 도맡았죠. 그래서 더 높은 마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었죠.” 시몬느는 중국 칭다오와 광저우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1곳, 베트남에 4개 공장을 운영 중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본사는 디자인 개발 R&D센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5년 박은관 회장은 마음속 깊은 열망이기도 했던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0914’브랜드가 그것이다. 박 회장은 말한다. “앞으로 10년간은 ‘0914’ 대박이네, 유명 연예인이 들었네 하는 얘기는 듣지 못할 겁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구나 들고 다니는 핸드백은 만들지 않을 거니까요. ‘0914’를 세계적 명품 핸드백으로 만들기 위해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10년, 20년을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박 회장은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서양식 핸드백 산업 역사에서 시몬느가 30년 가까이 한몫을 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시몬느가 글로벌 명품 핸드백을 만드는 ODM 기업이란 걸 숨기지 않겠다고도 얘기했다. 박 회장은 말한다. “이제는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닌 핸드백을 소비자에게 선보일 때라고 생각해요. 시몬느에겐 그럴 만한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세계적인 명품 핸드백이 나온다면 그건 당연히 시몬느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에서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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