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알짜 중견·중소기업에 특허 분쟁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는 국내 강소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특허 분쟁 위험도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28일 서울경제신문이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에 의뢰해 국내 대표 강소기업 31곳을 분석한 결과 약 80%에 해당하는 기업이 특허 전담 인력을 두지 않고 있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 특허 담당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5개 업체에 불과했다. 자체 보유한 해외 특허 역시 업체당 평균 2개로, 회사 전체 특허 가운데 해외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했다. 특히 조사대상 업체의 60%에 달하는 18개 업체가 정부에서 인증한 월드클래스300 기업임을 고려하면 일반 중견·중소기업의 특허대응 능력은 훨씬 더 취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담자도 두지 않고 특허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지금처럼 특허 사무소에 단순 위임하는 수준이라면 특허 등록을 받아도 권리 행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의 특허대응이 지지부진한 것은 특허를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 중견기업 특허 담당자는 “한 기업에서 특허를 50-60건을 갖고 있으면 특허청에 매년 내는 연차료만 대략 2억원에 달하는데 감가상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다 보니 전체 매출의 0.1% 수준이어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사이 단순한 라이센싱 비용을 지불하는 차원을 넘어 대형 피해를 입는 업체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프린터 부품회사 백산OPC는 캐논 가부시키가이샤와 특허분쟁소송에 들어갔다가 거액의 합의금 지급 등 악재가 겹치며 경영권이 넘어간 바 있다. 지난해 특허청이 발표한 해외 지재권 분쟁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허 분쟁을 경험한 101개 기업 중 중소·벤처 기업 비중이 81.3%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외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국내 대기업은 과거에는 협력사를 대신해 특허 방어를 해주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특허 대비가 부족하면 기존 협력업체 대신 해외에 있는 업체를 발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통신과 프린터, IT부품 등 일부 분야의 경우 이미 미국 등 해외 경쟁사들이 특허포트폴리오를 강고하게 구축해 시장 진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신한섭 특허법인 이룸리온 이사는 “현장에서 기업을 컨설팅하다 보면 신사업을 검토할 때 선행 특허와 경쟁사 기술동향 등에 대한 사전 분석이 부족한 기업들이 너무 많다”며 “전체 매출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하면 특허에 쓰이는 비용은 극히 일부인 만큼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관계자는 “당장 해외 특허 등록을 받기에는 기간이나 비용이 부담된다면 이미 확보된 특허를 리스하거나 매입하면 해외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