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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은행(BOJ)이 지난 29일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근본적인 경제체질 개선 없이는 아무리 금융정책을 완화해도 물가회복과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 신조 정권 들어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의 실적이 급격하게 꺾인 상황에서 소폭의 금리 인하만으로 설비투자와 소비가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제기된다.
29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린지그룹의 수석 애널리스트 피터 부크바는 BOJ가 물가를 비롯해 모든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이는 "경제적 가미카제"와 같은 무리수라고 진단했다. '가미카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를 일컫는 말로 이번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자살행위에 빗댄 것이다. 부크바는 "이번 조치는 BOJ의 양적완화 수단이 모두 고갈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워 글로벌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일본의 임금 인상률이 부진한 상황에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물가를 끌어올리려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처방이라고 진단했다.
유럽과 달리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모든 시중은행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기대만큼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는 2월16일부터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것은 민간은행들이 BOJ에 예치한 총 250조엔(약 2,500조원) 중 10% 정도인 10조~30조엔에 불과하다. WSJ는 나머지 자금에는 종전과 같은 0.1%나 제로 금리가 적용된다며 이번 금리 인하 조치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일본 언론들도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자 사설에서 이번 추가 완화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자금의 양을 늘리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측면도 보여준 것"이라며 "0%대로 침체된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금융정책만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현재의 역사적인 초저금리하에서도 은행이 대출을 크게 늘리지 않는 것은 기업의 자금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그 근본적인 문제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약간의 추가적인 금리 하락이 설비투자와 소비를 자극해 물가를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중국 등 신흥국 경기 부진으로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BOJ의 완화정책이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9일까지 발표된 438개 일본 상장기업의 4·4분기 경상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나 급감했다. 신문은 "아베노믹스의 원동력은 기업의 실적개선"이라며 "기업들의 실적호조에 힘입어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를 촉진하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난다는 시나리오의 대전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