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심각한 '의도' 없는 작품, 그러나 '의미'는 깊다

'어어부밴드' 보컬겸 화가 백현진… 일상 속 예술 표현한 개인전 열어

갤러리서 '사운드 퍼포먼스'도 펼쳐

백현진 사진2

음주가 초래하는 위험한 상황도 적지 않지만 술을 마신 일종의 '비정상' 상태가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생각과 활발한 감각을 일깨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저릿했던 기분은 소주 반 병 이상이었다. 눈물도 좀 맺혔다. '감동의 울림'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열림'에 가깝다. 비정상의 눈에 정상과 평상(平常)이 숨겨뒀던 부조리와 빈틈이 발각된 듯했다.

서울 삼청로 청와대 옆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백현진(44·사진)의 개인전에서다. 작가는 '한국의 명반 100선'에 꼽히는 어어부밴드의 보컬로도 유명하다.

사진처럼 생생한 묘사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장면이 있고 구구절절한 말로도 차마 다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한 마디로 축약하는 것은 어렵다기보다 불경스럽다. 제목 '어릴 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순간'의 작품처럼 문득 떠오른 어떤 이미지를 그리더라도 그 안에는 시간과 공간의 축적된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 감각들이 뒤섞인다. 백현진은 이같은 시공 초월의 공감각을 함축하는 동시에 서정성까지 묻혀낸다. 그래서 좋다.

개인전의 제목은 '들과 새와 개와 재능'. 갤러리 측은 "백현진이 늘상 되뇌는 미학적 목표 'Doing for Nothing'과 닮았다"고 소개했다.

"별거 안 하려는 겁니다. 부질없는 노동, 혹은 헛된 노동이라는 뜻으로 쓴 것인데요. 진짜 뭔가를 안 해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비유하자면 맨손체조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 심각한 의도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일깨우는 의미는 깊다. 부질없는 붓질에 하루 10시간 이상 매달렸다. 그는 '작품' 대신 '보이는 것', '작업' 대신 '붓질', '음악' 대신 '소리'라는 표현을 쓴다. 미술과 음악을 고귀한 예술로써 일상과 분리하기보다는 삶 안에 스민 채 두려는 의지다.

그림에는 사람도 있고 개와 동물들도 보인다. 눈보라와 밤 풍경, 침묵과 대화, 불신과 익살 등이 마구 혼재한다. 하나 설명과 해석보다는 감(感)과 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구체적 형상을 찾아내려 한다면 보이는 게 없다.

작가는 매일 오후 4시, 갤러리로 출근해 2시간 이상 '사운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전시장의 배경음악을 작가의 현장 작업으로 매일 바꾸는 것인데, 제목은 '면벽'. 구석에 설치해 둔 음향장비를 작동하는 내내 작가가 면벽하고 있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02)734-9467


관련기사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