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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미술품 위작 논란으로 최근 국내 미술계가 소란스럽다.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미술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전작도록(카탈로그 레조네)'이라는 것을 발간해왔다. 전작도록은 생애·전시이력·소장이력·자료목록 등 한 작가의 모든 작품 내역을 담고 있는데 해당 작가 연구에 필수적인 책자로 인식된다. 국제미술연구재단(IFAR)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3,701권이 출판됐고 지금도 326권을 제작 중이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1994)'과 '장욱진 전작도록(2001)' 단 두 권뿐이다. 감정기반으로서의 기초 연구에 소홀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위작문제에는 미술계의 책임도 없지 않다. 기초 연구의 투자는 뒷전이고 영리 추구에만 매달린 결과 이러한 혼란을 불러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전작도록 발간 사업을 정부가 시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이를 연구기관이나 단체에서 주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렘브란트 전문가 에른스트 판 베터링, 세잔 전문가 존 리월드가 평생을 전작도록 제작에 투신하며 국제적으로도 권위 있는 전작도록을 발간해온 것에 비해, 불행히도 우리 미술계는 내로라하는 작가조차도 재단이 없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력으로 연구사업을 착수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기업 후원을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누가 생색도 안 나는 이 사업에 발벗고 나서겠는가. 렘브란트 리서치 프로젝트(RRP)의 전작도록의 경우 수십년간 네덜란드 정부의 재정지원이 있었고 게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의 경우도 국가가 재원을 부담한 사례를 고려하면 정부 지원은 의문을 품을 만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지나친 염려에 갇혀버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전작도록의 특성상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일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미술품 위작에 대처하는 보다 선진화된 방식은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건강한 미술생태계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