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금융정책

[리빌딩 파이낸스] 금융의 삼성전자 '유니버설 뱅킹' 산업 틀 바꾸는 청사진 짜야(

2부. 금융개혁, 어디까지 왔나 <3> 개혁의 고도를 높여라



현장 규제 개선 벗어나 금융지주 시너지 창출에 주력

은행·증권·보험 인력·시스템 교류로 경쟁력 키우길

중기·스타트업 지원도 은행 대출에만 의존해선 안돼

모험자본→은행→사모펀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축을


서울경제신문이 시리즈 '리빌딩 파이낸스 2016-금융개혁 어디까지 왔나'를 시작하며 진행한 금융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4.7%는 '금융개혁이 금융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와 별도로 금융권 임원진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도 상당수 임원들은 "지난 1년간 적체돼 있던 금융규제가 놀랄 만큼 풀렸고 이제는 시장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금융개혁에 대한 전반적인 호평 속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가장 많이 지적됐던 것은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금융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부분에 관한 것이었다. 금융개혁으로 금융의 실물지원 기능이 강화됐고 소비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금융 산업 자체의 글로벌 역량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한 대형 금융지주의 고위임원은 "글로벌 경쟁력 등을 보면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금융회사의 탄생은 여전히 요원하고 그런 방향으로 갈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현장 규제 개선 위주로 진행되던 금융개혁의 고도를 보다 높여 금융 산업의 틀을 바꾸기 위한 개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금융지주체제의 시너지 강화를 통한 △한국식 유니버설뱅킹 도입 △지나친 은행 의존도 탈피 및 자본의 선순환 구조 확립 △가격 자율성 확보는 시급한 숙제로 꼽힌다.

지난 2000년 우리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금융지주체제가 도입됐지만 국내 금융지주는 지주라는 울타리만 씌어놓았을 뿐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계열사들 간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지주체제의 시너지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도입한 보험 포함 복합점포만 해도 비금융지주 보험사들을 의식해 최대 3개로 출점이 제한된데다 그 안에서 은행·증권·보험 간 정보 공유, 고객 소개 등이 금지돼 있어 계열사들이 공간만 같이 쓰는 반쪽짜리 협업일 뿐이다.

업권별 문화의 차이, 개별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풍토, 불완전한 성과관리체계 등도 금융지주 내 시너지 창출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선출 과정에서 매번 발생하는 관치 논란은 금융지주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2014년 발발한 카드 3사의 정보 유출 사태는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금융지주 계열사 간의 정보 공유 시너지에도 찬물을 부었다.

국내 금융사들은 또한 전산 등 핵심 시스템을 아웃소싱하지 못하는데다 본부 부서도 계열사마다 별도로 유지해야 해 금융지주라는 모델이 무색할 정도다. 국내 금융지주의 한 전직 회장은 "유럽의 유니버설뱅킹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융지주 안에서 은행과 증권·보험 등이 복합상품을 만들고 서로 간 인력과 시스템을 교류하며 이를 바탕으로 효율성을 높여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단순히 은행과 증권·보험을 섞는 방식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금융지주 차원의 세제혜택을 강화하고 지주라는 컨트롤타워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들어 대대적인 금융개혁이 이뤄졌지만 금융의 실물지원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금융 산업의 구조를 왜곡하는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금융권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권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중소기업, 벤처 스타트업 육성과 관련, '투자'를 활성화해야 할 부분을 은행의 '대출'에 의존해 해결하려 한다거나 기업과 지역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구조조정의 짐을 가장 덩치가 큰 은행에 씌우는 행태는 금융개혁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대표적 과제로 꼽힌다. 은행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이 있다 할지라도 '위험금융'의 영역까지 은행에 의존하는 것은 더 큰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고 금융 산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방해한다.

2014년 금융당국이 도입한 기술금융만 해도 '기술을 담보로 한 투자 활성화'라는 취지는 좋았으나 이를 가장 보수적인 경영을 해야 할 은행에 떠안겼다는 점에서 정책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7개 은행의 기술금융대출은 75.4%가 기존의 거래기업이며 전체 대출 42조원 가운데 순수 신용대출은 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담보보증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본적으로 투자의 영역이어야 할 기술금융 분야에서 직접금융이 아닌 보증 등 간접금융의 비중은 85%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해 '혁신성 평가'라는 채찍을 갖고 기술금융을 독려하고 있으나 실제 은행들은 변칙적인 방식으로 기술금융 실적 확보에 치중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술기업들에 자본이 전달되는 효과도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중은행의 한 행장은 "중소나 벤처기업 투자를 할 수 있는 모험자본이 효율적으로 육성되고 기업들이 이를 통해 데스밸리를 지나면 은행이 이를 뒷받침하고 다시 이 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다면 사모펀드를 통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자본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며 "정책효과를 빨리 얻기 위한 조바심에 은행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금융 산업 전체의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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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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