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양당 기득권구조 공고한 상황서

대안 없는 야권發 '새판짜기론'… 유권자 정치불신 극복 어려워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에서 밝힌 4월 총선 '새판짜기론'이 야권에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정말 (정치의) 새판을 짜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뒤 돌아오는 길이었다.

야권 유력정치인이 4·13 총선을 겨냥해 한 말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언급이다. 현 정치 상황을 '우물에 빠진' 것으로 규정한 것이나 야권의 전형적인 '정권 심판론'을 '새판짜기' 정도로 뒤튼 것 정도로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다. 그러나 이 발언이 주목받는 것은 발언을 한 주체가 손 전 고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목전의 4월 총선뿐 아니라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야권 지형에서 중요 변수 역할을 할 인물이다. 친노·운동권 프레임에 걸려 있는 더민주나 '새정치'를 표방하고 출범한 국민의당 모두 손 전 고문의 지지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손학규계'로 알려진 의원들이 국민의당에 상당수 합류했으나 여전히 더민주에 남아 있으며 4월 총선서 대구에서 돌풍을 예고하는 김부겸 전 의원 역시 손학규계다.

당장 이 발언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즉각 "문제 인식이 같다"는 찬동과 함께 손 전 고문에게 '러브콜'을 계속 보내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 2일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한국 정치의 판을 바꾸는 혁명을 시작한다"며 불과 이틀 전 손 전 고문이 내세운 새판짜기론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조차 방송 인터뷰에서 "새로운 정치, 구태 정치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맞장구를 쳤다. 새누리당과 함께 청산돼야 할 기득권 양당구조의 한 축인 더민주 원내대표로서 발언의 수위가 상당히 높다.

이처럼 손 전 고문이 제기한 4월 총선 새판짜기론은 야권 전체에서 상당한 울림을 얻고 있다.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독식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새판짜기론은 야권의 선거 프레임으로서는 당연하면서도 간결하고 신선하다. 특히 두 야당 역시 총선에서 정통성과 제1 야당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방식으로 이를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새판짜기론의 지향은 분명치 않다. 새누리당을 저지한다는 목적은 있으나 절대적 개념가치와 내용이 없다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더민주나 국민의당 모두 이번 총선에서 진보라는 기존 지향보다 소위 '우클릭'이라는 중도에 방점을 두고 있다. 더민주가 '더불어성장론'으로, 국민의당 역시 '공정성장론'까지 내세우며 한국 경제의 성장론 논쟁에까지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사회 불균형 시정을 위해 분배를 일방적으로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성장 담론'에도 상당히 신경 쓰는 분위기다. 대기업에 대한 공격은 여전하지만 이의 대안인 성장동력 문제에도 시선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판짜기론의 핵심동력은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정치불신은 무능하고 오만한 새누리당뿐 아니라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19대 국회를 식물상태로 만든 야권까지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무엇이든 여의도 기성 정치권은 배제하거나 바꾸고 싶은 것이 이번 총선의 표심이다. 지난 대선서 '안철수 현상'에 반향이 컸던 이유이기도 하고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4월 총선 새판짜기론이다.

문제는 선거가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답을 찾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여야 양당의 기득권 구조가 이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져 온 것도 제3의 대안이 마땅치 않았던 결과다. 야권에서 불고 있는 새판짜기론도 결국 가치 지향과 내용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때 선거판에 분 바람에 그칠 것이다. 아무리 정치불신이 크더라도 우리 유권자들이 '그 사람이 그 사람' 식의 새판짜기에 동의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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