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일본을 뒤흔든 록히드 스캔들



1976년 2월 4일. 미국발 보도 하나에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가 146쪽 짜리 보고서를 통해 록히드사가 항공기 수입을 도와주는 대가로 일본과 서독, 이탈리아 등에 거액의 뇌물을 뿌렸다는 사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충격이 가장 컸던 이유는 두 가지. 우선 뇌물 액수가 컸다. 구린 돈을 받은 12개국의 뇌물 총액 1,540만 달러 가운데 일본에 간 돈이 1,255만 8,000만 달러. 81%가 넘었다. 두 번째는 뇌물 수수 의혹의 최종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 角榮) 전 총리 대신이었기 때문이다.


다나카가 누구인가. 학벌에 대한 차별이 유달리 심한 일본 사회에서 초등학교 졸업장만으로 사업가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며 ‘서민 총리’라는 애칭까지 얻었던 인물이었다.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언론의 심층보도로 물러났으면서도 막강 자민당의 최대 주주로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던 거물이었기에 일본이 쇼크 상태에 빠져들었을 수밖에.

다나카 측은 전면 부인했으나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치인과 공무원·기업인의 검은 유착 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결국 다나카는 그해 7월 일본 검찰에 구속됐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총리가 구속된 것은 일본 헌정사상 처음.

도대체 얼마나 먹었기에 그랬을까. 록히드사의 F-104 전투기*와 L-1011 여객기를 수입해주는 대가로 다나카 전 총리가 받은 뇌물은 약 200만 달러. 일본인들은 금액 자체보다 대표적 정치인이 외국의 뇌물을 받아 들통 났다는 사실에 화냈다. 록히드 뇌물 스캔들이 일었던 서독과 네덜란드·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달리 일본에서 남다른 반응이 나타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건은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전세계 기업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해외부정거래방지법(FCPA)도 이때 마련됐다. 이탈리아도 부패 방지법을 만들었다. 일본은 다나카 신화의 몰락을 지켜보며 자민당의 내분 심화를 겪었지만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득도 얻었다. 어떤 정치인도 법 앞에서 단죄될 수 있다는 교훈과 법에 대한 신뢰.

일본 검찰은 미국에서 흘러나온 록히드 스캔들을 파헤치면서 수사의 공간적인 제약을 딛고 온갖 회유와 압력을 뿌리치며 살아있는 권력, 거악(巨惡)을 단죄해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다나카의 자민당 내 경쟁자였던 미키 다케오(三木 武夫) 총리의 남모를 지원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 자민당 내 세력 구도를 보면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다나카는 ‘킹 메이커’로 군림했었다.


일본 검찰, 특히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총리를 실각시킨 리쿠르트 사건, 정계의 원로이자 능구렁이인 가네마루 신(金丸信)을 구속한 사가와큐빈 사건 등 권력형 비리사건을 파헤칠 때마다 일본 국민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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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많지 않은데 일본에는 있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디케의 저울’ 뿐 아니다. 질시 속에 질주로 마침내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오른 다나카로 하여금 총리대신 자리를 던지게 만든 기자들이 있었다. 주간 ‘문예춘추’지가 프리랜서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에게 20여명의 기자를 붙여서 두 달간의 취재 끝에 내보낸 200자 원고지 300매짜리 ‘다나카 카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 기사가 일본 주류언론의 추종보도를 이끌어내며 다나카를 현직에서 끌어내렸다.**

40년 전 일본을 뒤흔들었던 록히드 스캔들은 남의 이야기일 뿐일까. 뇌물을 제공했던 록히드사가 합병을 거치며 록히드 마틴사로 변한 오늘날, 한국은 최대 고객 중 하나다. 차기 전투기(F-35) 도입에서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은 물론 KF-16 전투기 성능 개량 사업, 레이더 도입에 이르기까지 30조원이 넘는 사업의 주요 공급자로 떠올랐으나 저들 마음대로다.

큰 돈을 주는 구매자 입장이면서도 할 말 제대로 하고 있는가. 약속했던 기술 이전에 대해 딴소리하는데도 뭐라 항변했다 소리를 못 들었다. 오죽하면 ‘록마족’이라는 말이 나올까. 록마에 속는 것인지, 록마족이 국민과 정치인을 속이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한국의 안보에 대한 주요 계약자인 록히드 마틴이 선관의무(善管義務)를 다할 것이라고 믿어도 40년 전 록히드 스캔들이 우리에게 주는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록히드 스캔들보다 정도가 훨씬 더한 뇌물사건을 수없이 치르면서도 어떤 결과와 교훈을 심었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수사는 공정하며 법 집행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언론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부끄럽다. 반복적으로 낭비되는 ‘사회적 기회비용’의 끝이 어디에 있을까./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 일본이 도입한 F-104 전투기는 실용 전투기로는 최초로 마하 2의 벽을 넘어 기대를 모았던 기체. 1960년대 초반부터 2,578대가 자유진영 15개 국가에서 운용됐으나 ‘과부 제조기’로도 악명이 높았다. 모두 916대로 미국보다 많은 기체를 운용했던 서독은 전투가 아니라 훈련에서만 292대가 사고를 일으켜 조종사 110명이 죽었다. 사고율 31.8%. 138대를 도입한 네덜란드에서는 43대가 사고를 냈고 벨기에는 113대 중 41대가 떨어지거나 고장났다. 200대를 운용한 캐나다의 사고율은 50%에 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기체는 뜻밖의 용도로도 쓰였다. 자동차로 개조돼 미국의 소금사막을 초음속으로 달리는 기록을 세웠다고.

** 금권 정치가 횡행하던 당시 일본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다나카는 어깨, 미키는 끝 손가락.’ 미키는 손가락으로 겨우 들 수 있는 돈을 쓰는 반면 다나카가 쓰는 돈은 어깨에 매야 옮길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돈 씀씀이가 컸던 다나카 총리는 74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막대한 자금을 뿌렸는데도 130석 가운데 62석 밖에 못 얻는 참패를 당했다. 돈을 너무 많이 살포했기에 문예춘추가 기획취재를 시도했다는 해석도 있다. 결국은 일본 국민들의 선택이 거악을 무너뜨린 셈이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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