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 통해 세상읽기] 보본반시

설날 고향 찾아 조상 은덕 기리듯 오늘날 이룩한 사회에도 감사를

자신의 혜택 공동체와 나눌 때 모두 하나되어 명절 즐길 수 있어


한 해가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설날이 성큼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민속 명절이다. 하지만 요즘 민족 명절의 의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쉬는 날이 긴 만큼 이 기회에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또 생업과 취업 그리고 학업 등을 이유로 고향을 찾지 못하고 지금 있는 곳에서 계획대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명절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뒤로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명절은 다 같이 즐기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처지대로 다양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설날에는 평소 흩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척들이 만나 소식을 전하고 아이들은 어른에게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는다. 설날 풍경으로 돌아가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제사도 빼놓을 수가 없다. 요즘 제사 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해 힘이 든다는 명절 증후군을 연상시킨다. 모두 즐겁게 보내야 하는 시간에 몇몇 사람만 고생한다면 이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명절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명절 증후군'의 이미지가 아니라 '행복한 명절'로 알려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다양하고 명절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진 요즘 의미를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우리가 고생하며 고향을 찾고 평소와 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이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 근원에 보답하는 '보본반시(報本反始)'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은 시작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반복의 특성을 갖는다. 하루는 낮에 시작했다 밤에 끝나고 다시 낮에서 시작하고 일주일과 일 년도 마찬가지다. 하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잘못된 점을 찾아내 다시 시작한다.

보본반시도 처음으로 회귀해 반복하는 인간의 숙명을 잘 나타낸다. 사람은 평소 자신의 일을 하다가 설날과 같은 명절이 되면 태어난 곳을 찾고는 한다. 다른 곳보다 고향을 찾으면 누구나 환대받고 다른 어떤 곳보다 푸근하게 느낀다. 힘들지만 고향을 찾으면 활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평소 뵙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나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보고 추억 서린 곳을 찾으면 자신이 정화되고 무엇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원래 보본반시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일가친척에게 한정되는 관계를 말한다. 이제 보본반시는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살림살이는 도시와 농어촌 또는 지역과 지역 사이에 격차가 있다. 명절에 고향을 찾으면 서로의 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상부상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농어촌에 남는 것을 도시에 가져오고 도시에 남는 것을 농어촌에 가져온다면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다. 도시의 물가가 높아 생활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지는 요즘 지역 간 교류는 도시와 농어촌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은 특히 농어촌에서 태어나 도시에 살고 있는, 즉 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도 고향에서 끊임없이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길이다. 그것이 또 다른 보본반시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공동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을 일궈낸 선배들의 업적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은 내가 잘나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 앞에 우리나라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영령 덕분이다. 이것이 바로 명절을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조상과 후손, 그리고 선배와 후배가 모두 하나가 되는 축제의 시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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