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北 도발 앞에 벌거벗은 대한민국

북한 비핵화 대화로는 불가능… 유럽식 전술핵 재반입 검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병행 등 핵입지 확대 위한 '결단' 내려야

김태우

이론가들은 군비통제의 형태를 '레이건형'과 '성인군자형'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레이건형 군비통제'란 상응하는 군비경쟁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에게 일방적 무력 우위를 꾀하다가는 감당하기 힘든 결과가 초래됨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성인군자형'은 자발적으로 군사력을 감축하면서 상대가 감복해 따라올 것을 기대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레이건형 군비통제가 성인군자형 군비통제를 이끌어낸 사례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구소련이 핵무기 증강을 멈추지 않자 전면 핵공격을 막아낼 방어무기들을 우주에 배치하는 '별들의 전쟁 프로그램(SDI)'을 강행했다. 구소련은 자국의 핵무기들이 졸지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SDI를 돌파할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 군비경쟁으로 소련은 재정적 파탄에 이르고 결국 연방해체를 맞이했다. 소련은 핵경쟁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선회했고 미국은 SDI를 중단했다. 오늘날 레이건은 냉전을 종식시킨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죽기 살기로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북한 정권에 '평화와 안정' '민족적 비극 예방' 등 성인군자의 말씀을 앞세우고 설득하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면 한심하리만큼 순진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는 한국도 핵무장이라는 상응조치를 통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는 지름길이다. 그래야 중국에도 경각심을 줘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중국만 쳐다봐야 하는 한국의 핵입지도 개선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핵무장을 택할 수 없는 이유들이 많다. 대외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이 성장과 복지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면서 고립의 길을 갈 수는 없으며 동맹국인 미국의 반핵 확산 정책과 정면으로 상충된다는 점은 더욱 곤혹스럽다. 미국은 여전히 '내가 핵우산으로 보호할 것이니 독자 핵무장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견제하고 있으며 한발 더 나아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서 금지하지 않는 농축과 재처리마저 불허한다는 입장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핵보유와 비보유 사이에 있는 중간선택들을 통해 핵입지를 넓혀야 한다. 동맹차원에서는 미국의 공대지 핵무기에 한국 공군기가 투발(投發)수단이 되는 유럽식 '전술핵 재반입'이나 핵탑재 전략잠수함의 동해 상시 배치를 검토할 수 있으며 동맹조약에 자동개입 조항과 핵우산 공약을 명시하는 방안도 협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결단도 내려야 한다. 사문화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폐기하고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건조하기 위한 농축에 착수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의 친환경적 처리와 플루토늄 확보를 위한 재처리도 병행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이지만 미국이 북핵과 미사일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한국을 위해 이 정도 발상의 전환마저 거부한다면 과연 '같이 갑시다'를 외치는 동맹이라 할 수 있을까. 이제 한미 간 대북 공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미국은 벌거벗은 동맹국에 외투는 아니더라도 속옷이라도 입혀주는 것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한국·미국·중국·북한 등이 현재의 입장에 안주하는 동안 10년, 20년 흘러간다면 한반도 안보지형은 어떤 모습이 될까. 중국은 유일 동맹국 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된 것이 전략적으로 불리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며 북한은 중견 핵보유국이 돼 한반도를 호령하려 들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삭풍 앞에 떨고 있는 나신(裸身)의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국민은 과거 정부의 무능을 질타할 것이다.

김태우 건양대 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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