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춘제에 비친 중국 민심

중국 최고의 명절은 단연 춘제(春節·설날)다. 일주일 넘는 춘제 연휴 기간 귀성을 위한 대이동이 벌어지면서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는 텅텅 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도심에 차도 드물어 숨이 턱턱 막히는 스모그를 이 기간만큼은 피할 수 있다.

베이징 시내는 텅 비지만 유독 사람들이 밀려드는 곳이 있다. 베이징의 상징인 톈안먼 광장이나 대표적인 후퉁(전통 뒷골목)인 난뤄구샹과 같은 여행지다. 베이징 명물로 꼽히는 묘회(명절날 사당 등에서 열리는 임시 장터)가 벌어진 디탄 공원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춘제 연휴기간 동안 중국인들은 묵은 때를 씻어 내거나 한 해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가족 친지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매년 반복되는 중국의 이런 춘제 풍경은 비슷하지만 올해 중국인들이 나눈 춘제 담화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춘제 기간 7억이 넘는 중국인이 본다는 중국중앙TV(CCTV)의 설 특집 연예 프로그램 '춘완(春晩)'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같은 변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예년과 달리 올해 춘완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두드러졌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등장해 지난해 9월 벌어진 전승절 퍼레이드를 재연하는가 하면 '공산당 없이는 새로운 중국도 없다' '아름다운 중국' 등 중국 경제의 번영을 선전하거나 애국심을 부추기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무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셀린 디옹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와 인기 코미디언들을 등장시켰던 과거 춘완과 크게 달라진 프로그램에 중국인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일부 네티즌은 춘완이 진행되는 중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난의 글을 토해냈다. 영화제작자인 저우총치안은 "신년 갈라프로그램이 드디어 거대한 정부 선전 영화로 변질돼 버렸다"는 분노의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잡지 '윈난디스커버리' 편집장인 지루팡은 올 초 중국 증시에 도입됐던 서킷브레이커(증권거래 일시중지) 제도를 들먹이며 "CCTV 방송에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춘제 TV 프로그램의 백미로 꼽히는 춘완이 중국 경제의 번영을 선전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무대로 가득 채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지만 중국 경제 둔화와 남중국해 국경 분쟁 등 최근 부쩍 고조되고 있는 대외 갈등이 첫손에 꼽힌다. 여기에 북한의 핵 도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겹치며 중국의 애국주의 정신 고취 움직임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 이후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중궈멍(中國夢·중국의 꿈)'이라는 단어가 이번 춘제 연휴기간 CCTV 등 중국 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한 것도 이 같은 흐름 연장선이다. 우리로서는 중궈멍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표현되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배경에 애국주의로 포장된 국수주의·군사주의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춘제 기간 난뤄구샹에서 만난 중국 소시민들에게서는 오늘 중국의 또 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중국 경제 둔화의 짙은 그늘이다. 의류 공장의 근로자라고 소개한 리유보씨는 "정부가 여러 가지 경제 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서 "지난해까지는 그나마 회사를 다닐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후퉁에서 들어본 중국 민심'이라는 기사에서 랴오닝 출신 공장 노동자 리샤오휘는 "중국 경제가 지난해 6.9% 성장을 했다고 하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사실은 그보다 한참 밑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애국심을 호소하며 중국 경제의 번영을 선전하는 중국 당국의 중궈멍은 아무래도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중국 소시민들의 춘제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홍병문 베이징 특파원 hb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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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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