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1980년대 우리네 삶 8인의 시선으로 보다

'리얼리즘의 복권'展 28일까지

05 임옥상, 귀로, 1984, 종이 부조에 먹, 채색, 180x260cm
임옥상 1984년작 '귀로'
01 권순철, 갯펄 아낙, 1975, 캔버스에 유채, 100x72cm
권순철 1975년작 '갯펄 아낙'
신학철, 시골길, 1984,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신학철 1984년작 '시골길' /사진제공=가나아트


해질 녘이 되어 도착하는 아들네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일까. 곡괭이를 쥔 손과 흰 고무신을 신은 발은 한평생 일만 하다 그을린 탓에 노을과 흙빛에 파묻힐 듯하다. 신작로를 따라 달려오는, 유난히 빨간색이 쨍한 자동차와 대조를 이룬다.

1980년대 우리네 삶과 정치·사회적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한 전시이자, 가나아트가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해 단색화전에 이어 두 번째 여는 전시다. 신학철, 이종구, 민정기, 황재형, 권순철, 임옥상, 고영훈, 오치균 등 8명의 작가의 대표작을 엄선해 100여점을 선보였다.

콜라주 형식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신학철이 1층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그의 대표작은 '한국 근대사' 시리즈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희생된 사람들부터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그림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거대한 '나선형 탑'을 이룬다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 간 사람들 하나하나가 작은 돌덩이로 그 탑을 이루는 형식이다.

지하 1층의 이종구는 자신이 나고 자란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의 사람들을 그려왔다. 1980년대 쌀 개방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농민문제가 현안이던 시절에는 캔버스가 아닌 양곡푸대에 그림을 그렸다. '광부화가' 황재형은 1979년부터 탄광촌 기행을 시작해 강원도 태백의 탄광에서 실제 광부생활을 하며 치열한 생존 현장을 그림으로 남겼다. 때로는 탄광에서 가져온 석탄이나 흙을 개어 그리기도 했다. 임옥상의 80년대 작품 '땅' '웅덩이' 등은 강렬한 붉은 색이 인상적이다. 현실의식을 강하게 드러내 온 작가라 이념대립이 치열하던 시절에는 '그토록 붉은 빛'을 공공장소에서 전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그리는 오치균은 미국 유학시절의 자신을 누드화로 그렸는데, 어두운 방 안의 유일한 빛인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선 젊은 사내의 몸뚱이가 처절하다. 인물을 완전히 해체해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 기운만은 생생하게 남겨둔 권순철,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는 고영훈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장 맨 위 5층에서는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활동한 민정기를 만날 수 있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싸구려와 키치(kitsch)적 소재로 당대 정치상황 뿐 아니라 기성 예술계를 향해서도 저항의 목소리를 냈던 작가다.

거장의 전성기 작품을 보는 재미가 있고 그들이 시대 변화에 순응하거나 적응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28일까지.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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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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