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2월 15일, 미국 필라델피아시 펜실베이니아 대학 특설 실험실.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켜자 필라델피아시 전체의 형광등이 깜박이고 희미해졌다. 1만 7,468개의 진공관이 들어간 무게 30톤짜리 기계가 전력을 잡아먹은 탓이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세상에 나타났다. 높이 2m에 길이 24m짜리 에니악은 수학교수가 계산기로 20시간 매달려야 풀 수 있는 ‘9만 7,367의 5,000 제곱 승(乘)’을 30초 만에 풀어냈다. 에니악이 복잡한 수식을 순식간에 해결할 때마다 참석했던 과학자, 보도진, 군 관계자들의 탄성이 터졌다.
최초의 컴퓨터 공개에 왜 군인들이 끼었을까. 발주자였기 때문이다. 야포나 함포,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탄도 계산용으로 군은 컴퓨터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대기 온도와 바람의 세기, 방향 등에 따른 최대 사거리와 포신의 각도, 필요한 장약 수를 계산하는데 적어도 셈식이 100개 이상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던 상황. 에니악은 노련한 수학자가 7~20시간 걸려 풀던 문제의 답을 바로바로 토해냈다.
언론은 군보다 더 컴퓨터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인간이 제작해온 도구와 격이 달랐다. 유사 이래 수천, 수만 년 동안 인간이 제작한 도구의 특징은 확장. 칼과 총, 심지어 원자폭탄도 주먹의 확장, 망원경은 눈, 자동차는 발의 확장이었으나 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연장하고 확장한 것이었다.
최초의 실험을 지켜 본 참석자들이 내지른 환호성은 얼마 안 지나 실망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덩치가 큰 에니악의 설치 공간만 42평. 내부의 전선 길이 130㎞. 진공관을 수시로 갈아 끼우는 번거로움도 따랐다. 가격도 비쌌다. 야포의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을 의뢰했던 미 국방부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낸 용역비는 48만 달러. 요즘 가치로 1,000억 가까운 돈이 들어간 에니악은 수소폭탄 개발에 몇 번 사용된 후에 용도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래도 에니악은 운이 좋은 편이다.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컴퓨터’라는 영예를 안게 됐으니까.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에니악 이전에도 컴퓨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의 항공기 연구원 콘라드 추제(당시 31세)는 1941년 5월 선보인 ‘Z3’는 기계식 컴퓨터로 꼽힌다. 10자리의 곱셈과 나눗셈을 3초, 덧셈과 뺄셈은 0.7초 만에 해낸 Z3는 데이터 저장기능이 없었을 뿐 이진법과 프로그래밍 등 오늘날의 컴퓨터와 비슷한 원리로 움직였다.
영국이 독일군의 암호 해독을 위해 1943년 개발한 콜로서스 역시 프로그램이 가능한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로 불린다. 에니악보다 몇 년 앞서 등장했음에도 Z3나 콜로서스가 빛을 못 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국은 독일군 암호를 푸는 결정적 도구인 콜로서스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비운의 천재 앨런 류팅(42세 나이에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으나 유명 기업의 사과 모양 로고에 흔적을 남겼다는 천재 수학자)도 ‘지나치게 보안을 강요받는 분위기에 심신이 지쳐갔다고 전해진다.
컴퓨터 산업에서 독일은 기회를 날린 케이스로 회자된다. 지라드 추세 역시 전투기 설계, 공기역학 분석을 위한 군사용도로 Z3 컴퓨터를 제작했으나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개발비용이라야 달랑 6,500 달러. 연구도 거의 혼자서 수행해냈다. 회사에서 독일 정부에 컴퓨터 제작을 건의하면 “공군은 천하무적이기 때문에 계산이 필요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추제가 뿌렸던 컴퓨터 산업의 씨앗은 결국 말라 비틀어지고 말았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의 이름은 후속 컴퓨터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며 더욱 빛을 얻었다. 해마다 보다 가볍고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가 속속 등장하며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인간의 우주개발과 달 착륙도 두뇌의 확장과 연장인 컴퓨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필라델피아의 환호성 이후 한 갑자(甲子)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에니악보다 무게는 3만배 가볍고 속도는 1만배 이상 빠른 노트북 컴퓨터를 1,000달러면 살 수 있다. 그야말로 광속(光速)의 진화다. ‘자동차가 컴퓨터처럼 발전했다면 롤스로이스의 가격이 2.7달러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작 신개발 기술과 가격 경쟁의 덕을 본 나라는 미국보다 일본. 컴퓨터의 부피를 차지하는 진공관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이 개발한 트랜지스터(진공관의 220분의1 크기)를 잽싸게 응용한 일제 라디오는 전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일본과 전쟁, 특히 함포전에서 승리하려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미국의 컴퓨터 기술이 예전의 적국을 살린 셈이다. 세계 각국은 컴퓨터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요즘도 사력을 다해 경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계 업체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가운데에 끼인 한국은 잘 보이지 않는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