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61> 니힐리스트, 최선을 좇다 의지를 쫓은 사람들





일주일 중 5일을 열심히 살다 주말을 맞이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TV를 켜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모바일 게임 같은 것들이나 하면서 소일한다. 마음 한구석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지만 꾹꾹 눌러 놓는다. 그러다 저녁쯤이 다 되어서 분통이 터진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갔구나.’ ‘나는 이렇게밖에 토요일을 보낼 수가 없구나’하고 자조하며.

자기 삶을 허무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우울하고 공허하게 보내는 상태를 가리켜 ‘니힐리즘’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라틴어로 허무를 뜻하는 ‘니힐’에서 착안하여 만든 말이다. 투르게네프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에서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의 행동을 통해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일상을 보내는 인간형을 그렸다. 바자로프는 기성 사회의 패러다임에 반의(反意)를 품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할 의지는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애첩이자 하녀 페니치카와 염문을 뿌리는가 하면 술이나 먹고 살아가는 한량이다. 바자로프는 자기의 삶을 능동적으로 바꿔 볼 노력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생각만 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는다. 말 그대로 감동 없는 삶이자 건강하지 않은 인생이다.


보통 허무에 빠지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삶에서 진짜 자기 욕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해 이입된 욕구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일러준 대로 ‘1등해야 해’. ‘좋은 직장에 가야 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아야 해’라며 강제 받는 사람들은 한참 지나서야 진정한 ‘자기’가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해야만 경쟁력이 있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도권의 규정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사회가 만들어 낸 신기루를 좇다가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허무주의에 빠진다. 자기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들을 저주하며 열심히 살아봐야 남의 배를 불릴 뿐이라는 회의론에 경도된다. 이쯤 되면 남다른 삶을 살기 위한 인생 전략이나 조언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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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그랬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어렵게 권력을 물려받은 그는 인생 말년에 극도의 매너리즘과 니힐리즘에 빠졌다. 언제나 ‘후계자’로서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티베리우스는 오히려 권력을 잡고 나서 태만해졌다. 그래서 카프리 섬에 별장을 짓고 국정은 게을리한 채 향락을 즐기는 노년을 보냈다. 그는 절대로 ‘놈팽이’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목표를 잃어버린 순간 쾌락과 유흥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니힐리즘의 처방으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작은 성취’를 이루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니힐리스트들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경향이 있다.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자기 삶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실패를 정말 두려워한다. 그래서 도전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을 과소평가하고, 현주소에 머물렀을 때 얻게 되는 것을 과대평가한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니힐리즘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한 집착과 손해 보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태도가 그들을 서서히 잠식했을 터다. 타인의 실패를 바라보며 ‘거봐,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래서 ‘일단 부딪혀보자’는 무조건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 확신하게 되었을 테니까.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일단 부딪혀 볼 필요가 있다. 수천 수만 가지의 시나리오를 짜고 대비해도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던가. 애초에 완벽한 대비가 불가능하다면 일단은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 실패의 영향이 작은 일만이라도 ‘재지 말고 부딪혀 보자’. 따지고 보면 상상하는 데 쓰고 있는 에너지만큼 큰 기회비용도 없다. 최선의 선택이 시도 그 자체일 수 있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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