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1054년 교회 대분열


교황 레오 9세의 특사 3명이 1054년 7월16일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소피아성당에 나타났다. 이들은 성당 제단 위에 뭔가를 올려놓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쳤다. 이어 신발을 벗고 교회를 향해 먼지를 터는 시늉을 하더니 사라졌다. 동방교회 성직자들이 제단 위에서 발견한 것은 교황의 파문장이었다. 파문장은 '회개하지 않으면 악마와 함께하는 것이다. 아멘.'이라는 말로 끝나 있었다. 특사가 외친 말은 라틴어로 "하느님이 보고 판단하실 것이다"라는 내용의 저주였다. 파문과 저주의 대상은 동방교회를 관장해온 콘스탄티노플 대관구의 총대주교인 미하일 1세였다.

특사들은 미하일 1세를 만나 그동안의 종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파견됐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댄 양측은 서로에 대한 비난만 키웠고 결국 도저히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사의 파문장은 바로 찢겨 불태워졌고 미하일 1세는 주교 회의를 소집해 교황 특사들을 맞파문했다.

동서교회 대분열(Great Schism)을 일으킨 종교 갈등의 발단은 빵 한 조각이었다. 당시 서방교회는 성만찬식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사용한 반면 동방교회는 누룩 넣은 빵을 썼다.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이전에 있었는지 아니면 이후인지를 놓고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발단은 빵이지만 근원에는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욕이 있었다. 로마의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등 나머지 4대관구의 총대주교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싶어 했고 이를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한다는 교황권으로 구체화했다. 총대주교의 대표인 세계총대주교를 자처한 미하일 1세로서는 코웃음칠 수밖에 없는 황당한 주장이었을 것이다.

로마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가 최근 쿠바에서 만나 양 볼에 입을 맞췄다. 서로 파문하고 갈라선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거의 1,000년이 걸렸다. 파문을 철회하고 원상회복을 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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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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