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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으로 위기 넘어서자" 공동 브랜드 구축 나서
단순부품 제조 뛰어넘은 고부가제품 생산도 추진
"기술 교육 중요성 절감" 학원 차려 노하우 전수
새 아이디어로 무장한 2세들 참여도 줄이어
지난해 말 국내 소공인 60여명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원하에 두 팀으로 나뉘어 소규모 제조산업이 발달한 미국과 독일을 방문해 해외 소공인 인프라를 경험했다. 소공인들이 모여 해외 탐방을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 뉴욕의 한인의류산업협회와 인쇄 업체 유니콘크래픽스, 브래드퍼드의 지포라이터 생산현장, 매사추세츠 소재기업의 수출확대를 위해 설립된 주정부기관 등을 방문했다. 독일팀은 헤센투자청과 프랑크푸르트 오펜바흐상공회의소 등을 방문해 독일의 소규모 제조업 인프라 구축현황과 인재양성 시스템을 보고 배웠다. 미국 뉴욕 봉제 산업 현장을 둘러본 노양호 대성실업 대표는 "뉴욕 봉제 업체들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등 해외 업체들과 협업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새로운 거래처 확보 차원에서 중국·태국 등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독일 소공인 탐방에 아버지와 함께 온 재연기계의 안성모씨는 "4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아버지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큰 변화"라며 "이번 탐방에는 소공인 2세들도 많이 참여해 우리나라에서도 소규모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소공인들 가운데 협동조합을 만들어 업계 경쟁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인근에는 가방을 제조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모여 있는데 이들은 지난해 5월 양천구가방협동조합을 구성했다. 일감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자재 구매력을 키우고 공동 브랜드를 구축해 소공인들이 처한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움직임이 성과를 내면서 최근에는 양천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납품할 가방을 처음으로 공동 수주해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조규남 양천구가방협동조합 이사장은 "모두 공장을 가지고 제조할 능력이 있지만 일감이 줄어들고 있어 마케팅과 수주, 브랜드 개발을 함께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개 업체가 모여 협동조합을 구성했다"며 "소공인 2세 8명도 각자의 전공을 살려 협업을 도와주고 공동 작업장까지 만들어 수익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협업으로 조금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 문래동의 한양정밀 등 기계부품 가공업체 4곳은 지난해 말부터 스피닝바이크(상하체 운동기기)를 공동 제작하기로 하는 등 완제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관련 특허를 가진 업체가 상품화를 위해 부품 업체 대표들을 불러 협업하기로 한 것이다. 곽의택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센터장은 "오는 3월에는 상품화할 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고 기존 스피닝 기계와 달리 상반신 운동도 할 수 있어 양산 전부터 구매를 원하는 바이어들에게 연락이 온다"며 "소공인들끼리 단순 부품만 제조하지 않고 부가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기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하고 직접 학원을 차려 노하우를 전수하는 소공인도 있다. 문래동에서 기계업을 하는 박홍 국제금속상사 대표는 회사 근처에 직접 '아빠와 피노키오'라는 학원을 설립해 아이들이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기초 물리학이나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박 대표는 "기술은 10대 때 배워야지 군대 다녀온 후에 배우면 이미 늦어버린다"며 "조기교육으로 기술습득 능력을 제고하고 문래동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나 소공인 2세들에게 소공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 직접 교육활동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모두 소공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해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젊은이들도 생겨나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오현우(28) 지스타일 대표는 대학에서 실내 인테리어를 전공했지만 종로 귀금속단지에서 20년 동안 일해온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4년 전부터 주얼리 디자인을 새롭게 공부했다. 오 대표는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해 맞춤형 귀금속을 제작하며 아버지 사업체를 함께 성장시키고 있다. 아버지의 경력과 아들의 아이디어가 만나 회사는 순항하고 있다. 오 대표는 "실내 인테리어를 전공했지만 관련 일을 해보니 디자인보다는 현장인력을 관리하는 일이 더 많아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차라리 아버지가 해온 귀금속 분야에서 디자인을 하면서 개인사업체를 키워보자고 마음 먹게 됐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온라인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차가 됐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직원들 월급과 임대료를 지급할 정도까지 수익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동훈·강광우기자 hoon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