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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중국 푸젠성의 한 파라자일렌(PX)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에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됐다. 연 160만톤의 PX를 시장에 공급하던 대형 공장이 멈춘 틈을 공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PX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정유사 관계자는 "폭발 사고 이후 PX 시황도 개선됐다"고 귀뜸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이 같은 '중국 효과'가 올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유·석유화학 제품의 공급량을 늘리는 데 주력해 온 중국이 저유가와 공급 과잉, 경기 침체를 맞아 전략 수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실적을 가를 최대 변수가 중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유 완제품 값에서 원유 가격을 뺀 값(스프레드)는 지난달 말 배럴당 8.6달러까지 하락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는 경유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해 4·4분기부터 중국이 국내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경유 수출을 늘리면서 경유 정제마진이 더욱 악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정유업계의 실적과도 관련이 깊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지난해 정유 4사가 5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경유 정제마진이 더 좋았더라면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경유뿐만 아니라 휘발유를 포함한 전체 정제 마진까지 중국의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중국 정부가 올해 1·4분기 석유제품 수출 쿼터를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2,100만톤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급 과잉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정제마진을 더욱 끌어내리게 된다.
하지만 중국이 리스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저유가 탓에 꾸준히 원유 생산을 줄이면서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중국 1, 3위 원유 생산 기업인 석유화학공사(시노펙)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지난해 원유 생산을 전년 대비 각각 5%씩 줄였다. 자국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비용보다 국제 유가가 더 저렴해진 탓이다. 수익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S-OIL은 경유보다 수익성이 좋은 휘발유 생산량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생산 공정을 조정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도 비슷한 분위기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1.4% 줄었다. 중국 합성고무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공급 과잉이 빚어진 탓이다.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사상 최고 영업익(1조6,111억)을 거두는 등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실적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업체들의 공장 가동률과 경기 추이를 모니터링하기 바쁘다. 한 관계자는 "중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화학 수요국이자 공급 과잉의 주범"이라며 "중국을 빼놓고는 사업 전략을 짤 수 없다"고 전했다. 김형건 사장 등 SK종합화학 경영진이 올 초 중국 상하이로 근무지를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SK종합화학이 시노펙과, 금호석유화학이 상해일지승신기술발전유한공사와 손잡는 등 합작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중국의 증설 붐이 멈춘 데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저렴한 석탄을 기반으로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석탄화학설비(CTO) 증설이 대거 연기·취소되면서 석유를 기반으로 한 국내 화학업계의 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