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새공연]연극 ‘얼음’-상상과 환영이 완성하는 90분의 긴장

장진 작·연출 신작…두 명의 형사와 살인 용의자 소년의 심리전 그린 수사 추리물

‘이곳에 소년이 있다’는 설정 속 형사 역 배우 둘이 극 끌어가…관객, 상상으로 저마다의 소년 형체 완성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형체 없는 존재’는 그러나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으며 극의 긴장을 요리한다. 3인극이지만 배우는 단 둘뿐. 연극 ‘얼음’은 90분 동안 두 명의 배우와 관객의 상상으로 무형의 인물을 유형의 존재로 완성해 가는 작업이다.

얼음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열여덟 살 소년과 그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다. 작·연출을 맡은 장진의 말마따나 “줄거리는 통속적인 미스터리 수사 추리물이지만 형식적으로 보면 연극적인 실험”인 작품이다. 무대엔 형사 두 명만 등장할 뿐 정작 잔인한 용의자인 소년은 없다. 형사들이 마치 사람이 있는 것처럼 허공을 향해 말을 걸고 반응하고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동안 관객은 저마다의 감정과 스토리, 상상을 보태 소년의 형체를 만든다.


실존하는 두 배우의 열연 속에 소년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진다. 얼음은 형사1과 형사2가 번갈아가며 소년을 심문하는 장면이 많아 배우에겐 어쩌면 1인 극에 가까운 작품이다. 혼자 이끌어나가는 시간이 많아 대본을 처음 받아든 배우들이 모노드라마(1인극)로 생각했을 정도라고. 형사 두 명이 모두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은 물론 관객까지도 ‘한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고 확신할 만큼 몰입 높은 연기를 선사한다. 특히 두 사람은 극 중 형사에서 경찰서 내 다른 인물로 잠시 역할을 바꿔 자신이 했던 형사 캐릭터를 상대로 연기를 펼친다. 예컨대 형사2를 연기하던 배우가 순경으로 변신해 형사2가 있다는 설정 속에 허공에 대고 그에게 말을 건네는 식이다. 장진의 실험은 그렇게 실체와 환영의 경계를 보란 듯이 허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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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누구인지 확정하지 않은 애매한 결말은 실험의 성공을 의미한다. “텍스트만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이미 다 나와 있어요. 그런데 ‘누가 범인이냐’고 묻는 것은 관객이 이 연극 안에서 소년에 대해 저마다의 다른 환영을 만들고 나름의 다른 결말을 창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장진)

관객 입장에선 몇 번이라도 기꺼이 참여하고 싶은 흥미로운 실험이다. 형사1은 박호산·이철민, 형사2는 김무열·김대령이 맡았고, 3월 20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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