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반도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이라는 카드를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지 주목된다. 한반도 비핵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한미일의 주장과 선(先)평화협정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모두 배려한 제안으로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7일 베이징에서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제안하면서 “이런 방식의 취지는 각국의 주요한 우려 사항을 균형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대화·담판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조속히 대화 복귀의 돌파구를 찾는 데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그동안 북핵 해법과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며 시진핑 국가주석도 이를 언급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안한 것은 처음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협상이 속도를 내면서 이달 내에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이 같은 제안은 안보리 결의 이후 일정 시점에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비핵화-평화협정 협상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에 대해 중국 나름의 균형 찾기를 시도하는 한편, 이를 통해 대북 레버리지를 확보하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비핵화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보고 강력하고 실효적인 안보리 결의 및 양자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금 시점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한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평화체제의 구축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 따라 비핵화가 진전됨에 따라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협의할 수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달 20일 평화협정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북핵 문제가 북한 정권 안정과 관련된 문제로 바뀌어 미군 철수 등 군축 논의를 하게 되면서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면서 “북한이 최소한 핵동결 조치를 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후에야 평화협정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