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 통해 세상읽기]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

인생에서 배움의 끝은 없어 졸업은 새 과정으로 나아가는 시작

쉼없이 배워 삶의 지평 확장할 때 해방과 자유 경지 이르게 될 것


일 년 열두 달은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갖는다. 2월에는 아무래도 졸업식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면 대학입시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입시에 실패하면 아예 졸업식장에 나오지 않기도 하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학 졸업식장은 취업 여부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취업에 실패하면 불안한 미래를 염려하는 몸짓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람은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에 진학하듯이 어느 단계에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물론 좋은 결과를 가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출발이 산뜻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졸업식이 다음의 결과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 졸업은 지난 시간을 굳건히 버텨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사건이다. 그래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졸업식장을 찾아 시련을 견뎌낸 주인공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졸업이 갖는 의의는 인생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는 것에 견줄 수 있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 688년~742년)은 '관작루(관雀樓)에 오르며'라는 시에서 인생의 이러한 묘미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해는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네(백일의산진·白日依山盡, 황하입해류·黃河入海流). 내 눈으로 천 리 밖을 바라보고자 다시금 한 층 더 누각을 오르네(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

해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서산에 걸려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고요하게 보이던 강물이 갑자기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디까지 가나 상상해보니 드넓은 바다에 강물이 모이는 광경이 그려진다. 상상은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 벌써 다리는 힘듦을 잊고 한 발짝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일층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삶의 여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삐걱거리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업그레이드하는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아울러 사업·외교 등에서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나타낼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중국 지도자들이 외국을 방문해 두 나라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왕 시인의 시를 즐겨 읊조리곤 한다.

사실 인생에는 배움의 끝이 없다. 배우기를 그만두는 순간 사람은 고정된 사고의 틀에 갇혀 변하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졸업(卒業)이라는 말이 배우기를 마친다는 어감을 전달하는 듯해 다소 과격하게 느껴진다. 졸업은 학업을 영원히 마친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단계에 맞이한 학업의 과정을 매듭짓는다는 뜻이다. 그리해 앞으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배우기를 계속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텍스트의 형식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다. 물질적인 책의 형태만이 아니라 전자매체·아카이브·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실로 다양한 꼴로 돼 있다. 즉 현대인은 텍스트로 포위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대인은 학교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넘쳐나는 텍스트를 적시에 적절하게 활용하는 학업을 그만둘 수가 없다. 이러한 학업이 단순히 지적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왕지환의 '갱상일층루' 시구처럼 삶의 지평을 드넓게 펼치는 여정으로 확장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학업이 가져다주는 해방과 자유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졸업은 각종 학교를 마치는 제도적인 의례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생에서 스스로 쉼 없이 겪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