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청년 법정이 성철에 묻다

■ 설전 (성철·법정·원택 지음, 책읽는섬 펴냄)

절 풍경
백련암 뜰 앞에서 성철스님과 법정 스님
1973년 백련암 뜰 앞에서 성철(가운데) 스님과 법정(오른쪽) 스님이 함께 서 있다. /사진제공=책읽는섬
설전

韓 불교 대표하는 성철·법정 대담집

지도자의 자격·존엄성·종교 역할 등 20년 나이차에도 격의 없는 대화

현대사회 문제 해법도 엿볼 수 있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작게는 한 기업체를 이끄는 사장에 이르기까지 바람직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말씀해 달라".(법정 스님)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 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한다".(성철 스님)

"청년기의 인간 형성과 자아확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법정 스님)

"요즘 보면 밥을 먹는 사람보다는 밥에 먹히는 사람이 많은데, 인간 자신의 존엄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격 완성이나 기술 습득보다도 그 이전에 인간의 근본 자세, 인간의 존엄성부터 복구시켜야 한다".(성철 스님)

이 둘은 1982년 한 언론사의 주선으로 이뤄진 대담에서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법정은 대담에서 지도자의 덕목, 물질 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문제를 포함해 불교의 근본정신, 종교의 역할 등에 묻고 성철 스님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 없이 밝힌다.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 어떠한 지위와 권력 앞에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던 초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성철 스님.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수도자의 자세와 품위를 잃지 않은 삶과 글로 큰 가르침을 준 법정 스님.

태어난 곳, 출가한 시기, 대중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이 깊은 인연을 맺고 교류했다는 사실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성철과 법정은 20년이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동료처럼 때로는 스승과 제자처럼 깊은 인연으로 서로에게 힘이 돼 줬다.

설전(雪戰)은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인연의 흔적들을 발굴해 엮은 첫 책이다. 제목처럼 책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싸움이 아닌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의 성질로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을 표현했다.

성철스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이 진행한 백일법문을 녹취한 녹취록, 한 언론사 주관으로 이뤄진 대담 등을 통해 성철과 법정의 울림 있는 말들과 깊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76년 성철스님이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 후 같은 해 12월 4일부터 진행한 백일법문에서는 성철과 법정의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청년인 법정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불교란 무엇인지 등을 묻는 과정에서 성철 스님에게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교회에서 천국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비슷한 예민한 질문에도 성철 스님은 불쾌한 기색 없이 "자신이 이미 부처임을 아는 것, 그것이 성불입니다"라고 답한다.

이런 질의응답이 가능했던 것은 법정과 성철의 관계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이들의 대화를 읽다 보면 단순히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인 둘의 친밀함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둘의 대화 속에서 지금도 고민해야 할 문제와 해법도 엿볼 수 있다.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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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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