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한승원 HJ컬쳐 대표, 동서양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로 승부해야죠

쉽게 이룰 수 없는 꿈 그래야 지치지 않는 법

거울보며 수없이 주문

[CEO&STORY] HJ컬쳐 한승원 대표2
[CEO&STORY] HJ컬쳐 한승원 대표7

학창시절 아버지 사업 기울어 일순간에 금수저서 흙수저로…

쉼없는 알바 끝에 연영과 진학

연출·배우로는 재능 없었지만 대학생 기획자로서는 돋보여

돌고 돌아 뮤지컬 제작사 입사 '내 공연 올려보자' 욕심 창업

같은 전략으론 시장경쟁 안돼

해외 소재 가져오되 창작으로 '셜록홈즈·살리에르' 등 대박

해외서 잇단 러브콜 승승장구


뮤지컬 업계는 대형 외국계 라이선스물이 판치는 세상이다. 표가 잘 팔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롯이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세계로 나가려는 이가 있다. 일부 작품은 이미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다. 뮤지컬 제작사 HJ컬쳐의 한승원(사진) 대표 얘기다.

"제가 어떻게 지금의 훌륭한 사람이 되었느냐고요? 글쎄요…." 책상 옆 커다란 거울을 바라보며 미친놈처럼 수없이 자문자답했다. 무엇이 되든 성공하고 싶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그 금수저가 순식간에 흙수저로 탈바꿈한 청소년기. 힘들 때마다 거울에 말을 걸었다. 하루 2~3개의 아르바이트를 소화하는 고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유희요, '나도 잘될 수 있다'는 주문이 바로 거울과의 인터뷰였다. 악착같이 희망의 끈을 붙잡았고 단단해졌다. 이제는 예상 질문 몇 개쯤은 녹음기처럼 답할 만큼 인터뷰에 익숙해졌다. 또 달라진 게 있다면 맞은편에 '아르바이트에 찌든 고학생'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잘나가는 뮤지컬 제작사 대표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앉아 있다는 것. 그는 지금도 마음속 큰 거울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운다.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그래야 지치지 않는 법이다."

◇집안 형편에 대학 포기하려다 연영과 진학='이룰 수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강남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산 그는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며 일순간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맛봤다고 한다. "고3 때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몰래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돈도 많이 받고 회사에서 취업 제의도 하더군요. '어차피 대학에 가도 힘들 것 같으니 그냥 돈이나 벌까' 하고 고민하던 때 아버지께 딱 걸렸죠." '네 나이에 생각하기엔 이것은 작은 꿈이다. 벌써 기죽어 살지 않았으면 한다.' 이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평소 교회 성극을 즐겁게 만들고는 했던 그는 적성에 맞춰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아버지께 걸리지 않았다면, 그때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며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남달랐던 기획자로서의 끼=입학 후 '의도치 않게' 프로듀서의 길에 발을 내디뎠다. 연출은 재능이 없었고 배우로서는 끼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남들 안 하려는 기획 일을 맡게 됐는데 누가 알았으랴. 그 속에서 두각을 드러낼 줄이야. "공연을 기획할 땐 협찬을 받아야 했어요. 그때 다들 학교 앞 작은 가게에 가서 10만원, 20만원 받아오는데 저는 대기업에 직접 찾아가 대표를 만나 500만원씩 협찬을 받았죠." 진정으로 판을 벌일 줄 아는 것도 기획자로서 대학생 한승원이 돋보인 이유였다. 학생들로 구성된 공연기획팀 '놀다'를 만들었고 예대 학생회장을 하며 학교 간 교류를 넓혀 지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는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돌고 돌아 공연판…HJ만의 철학을 세우다=돌고 돌았지만 어차피 갈 곳은 공연판이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와 박물관 문화재단에서 일한 한 대표는 결국 퇴사 후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로 자리를 옮겼다. 몇 건의 프로젝트를 마친 뒤 '내 공연을 올려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2010년 '사람들(Human)에게 즐거움(Joy)을 준다'는 의미의 HJ컬쳐를 세우고 창작 뮤지컬 '셜록홈즈'를 선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고 '더뮤지컬어워즈'와 '예그린어워드' 등 뮤지컬 관련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뮤지컬 빈센트 반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등 신선한 창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HJ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키워가고 있다. 한 대표는 HJ컬쳐 설립 때부터 '남들과 같은 전략으론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이미 시장에 규모 큰 선점자들이 있고 그들과 같은 전략으로는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며 "해외 라이선스 작품, 스타 마케팅을 떼어내니 남는 것이 '창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창작에서 떼어내야 할 것은 또 있었다. "내수용 창작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한국을 넘어 세계 모두가 아는 소재를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해외 소재를 가져오되 창작으로 간다'로 전략을 세우니 겹치는 게 없더군요. 이게 바로 저와 HJ가 꼭 가야 하는 길이었죠." 평생 2인자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괴로워한 살리에르, 원하는 삶을 선택할 기회와 자유를 거세당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많은 사람이 아는 인물을 통해 인간 보편의 감정을 건드리는 HJ 작품의 정체성은 그렇게 생겨났다.

◇쉽게 이룰 수 없는 꿈…그래서 지칠 수 없다=착실한 노력 덕에 조금씩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빈센트 반고흐는 현재 일본 라이선스 수출이 진행 중이고 살리에르는 지난해 일본에서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초연한 연극 '만추'도 중국과의 작품 계약 논의가 오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오는 3월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15주년 특별공연을 펼친다. 마리아 마리아는 예수를 유혹하면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는 매혹적인 제의를 받는 성전 노예 마리아의 이야기로 거리의 여자에서 새 인생을 꿈꾸기까지 마리아의 굴곡진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HJ컬쳐는 2003년 초연한 이 작품을 최근 사들여 음악과 드라마 등 전반을 리뉴얼했다. 한 달 뒤에는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받은 파리넬리의 앙코르 공연도 무대에 올린다. 작품과 공연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행복하지만 늘 대가가 따른다. 몇 년이 지나도 첫 공연을 보면 몸이 아프단다. 관객 후기 하나에 울고 웃고 시름시름 앓기까지 한다. 그렇게 힘든데 왜 하느냐고? 한 대표는 이렇게 받아친다. "이미 중독돼버렸어요. 지금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된 거죠." 하루하루가 쉽게 이루기 힘든 꿈의 연속. 그 꿈에 중독된 프로듀서 한승원은 지칠 수 없다.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78년 전남

△2004년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2009년 단국대 문화예술학 석사

△2012년 동국대 문화콘텐츠학 박사

△2010년 HJ컬쳐 설립

△현재 HJ컬쳐 대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이사,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운영위원


주요 작품은…




△뮤지컬 = 셜록홈즈, 빈센트 반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마리아 마리아

△오페레타 뮤지컬 = 판타지아

△연극 = 만추


"1단계는 HJ만의 스타일 유지… 2단계는 '창작 시스템' 정착"


■ 한승원 대표 10개년 목표
연출진·배우, 신인이 함께해도 유기적 작업 가능 틀 만들어야
3D입체 영상 도입 등 차별화도

송주희 기자




2년 전 한 대표는 HJ의 10개년계획을 세웠다. 5년은 회사의 브랜드를 키우고 다른 5년은 이를 바탕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것. '10개년계획'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한 대표의 중간평가는 긍정적이다. "감사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 수도 많아졌고 다행히 관객에게 큰 외면을 받진 않은 것 같아요. 이 상태를 유지하며 우리만의 스타일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숙제예요." 1단계 5년을 지나 2단계 5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게 창작 시스템 정착"이라며 "연출진이든 배우든 신인이 함께해도 유기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틀을 제대로 만들어놓고 싶다"고 전했다. 산업계에 비유하자면 연구개발(R&D) 투자라고나 할까. '얼마 벌지가 아닌 마이너스를 어떻게 매울까를 고민한다'는 한 대표는 "지금은 공연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며 "자동차 산업이 엄청난 개발비 탓에 몇 년 지나야 수익이 나는 것처럼 R&D에 꾸준히 투자해 선순환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차별화다. 다른 제작사에서 하지 않은 시도로 작품에 새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HJ가 빈센트 반고흐에 3D 입체영상을 넣고 파리넬리를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 단계로 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대표는 "작품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계속 시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은 관객(고객) 서비스다. 한 대표는 "이미 많은 제작사가 있는 상황에서 HJ가 나타났다"며 "관객이 우리를 선택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우린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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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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