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폭포는 사라졌는데…

투자하라고 규제 풀었더니 살림살이 펴진 건 기업 뿐

가계로 돈 흘러가게 해야


폭포가 있다. 비가 와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폭포. 제주도를 자주 가는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엉또폭포'다. 한라산에 빗줄기가 강해지면 웅장한 폭포수를 떨어뜨리는 모습. 그래서 비경(秘境)이란다. 불행히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갈 때마다 비가 충분히 오지 않아서다. 본 것이라고는 볼품없이 그저 산속에 처박힌 그렇고 그런 절벽일 뿐이다. 관광객도 없이 을씨년스런 곳. 비 오지 않을 때의 엉또폭포는 그런 곳이다.

폭포는 산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기업이다. 물을 밑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폭포의 존재 이유이듯이 기업은 생산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가계에는 임금, 국가에는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기업은 생산과 분배의 출발점이자 경제의 정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정부는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주장하면 전봇대 같던 규제에 서슬 퍼런 철거 안내장이 내려온다. 30년도 더 전에 사라졌던 수출진흥확대회의가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로 모습을 바꿔 열리기를 벌써 아홉 번. 그때마다 수많은 전봇대들이 뽑혀나갔다.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세금도 깎아줬다. 지난해 실효법인세율은 16%도 안 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이 경제와 가계에 시원한 폭포수를 흘려보내 주기를 바랬던 역대 정부의 애원은 이토록 간절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토의 허파가 잘려나간다는 비판도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된다는 지적도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이라는 한 가닥 희망 앞에 기를 펴지 못했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경제민주화조차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에 1년도 안 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국민들은 기대했던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투자부터 지지부진하다. 기업당 설비투자액이 5년째 67억원 안팎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대표적.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같은 기간 제조업체들의 자산은 500조원 넘게 불었고 보유 현금도 590조원이나 된다. 저축률은 무려 20%가 넘는다. 돈은 차고 넘친다는 얘기다. 다만 투자에 쓸 돈이, 아니 생각이 없을 뿐이다. 금고 속에 처박힌 천문학적 현금. 그 시기 대기업 오너들의 후계 승계 작업은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위에서 물을 막고 있는데 아래로 흐를 리 없다. 한때 50%에 육박하던 국가 비금융자산 중 가계 비중이 이제는 40% 중반 아래로 떨어지고 가계소득 증가율도 기업의 4분의1에 머물렀다. 대신 가계 빚은 1,200조원을 넘어섰다. 어디 이뿐이랴. 꽉 막힌 취업 문에 16년 만에 최악으로 떨어진 청년실업률은 2030 세대의 소비 욕구를 소멸시켰다. 이래놓고 소비가 되살아나기를 내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꿈같은 얘기다.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는 틀린 말이 아니다.

누구는 얘기한다. 우리 사회는 반기업정서가 문제라고. 맞는 말이다. 생산과 분배의 정점에 있는 자를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니 사회가 뒤틀리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기업정서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왜 그런 인식이 만연하게 됐는지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2014년 정부는 가계소득을 늘리겠다며 일련의 세제 패키지 정책을 내놓았다. 기업이 과도하게 들고 있던 자금을 배당과 임금 확대로 가계에 돌려줘 분수 효과를 노리겠다는 게 원래 의도였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배당뿐이었다. 누구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는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집권 4년 차 돌입 하루 전인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일자리 중심론'을 꺼내 들었다. 모든 국정 운영의 중심에 일자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끝까지 기업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표현인 듯하다. 과연 언제쯤 기업이 화답을 해줄까. 그토록 기다리던 폭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자꾸 시간만 흘러간다. 이제는 폭포를 기다릴 게 아니라 분수를 만드는 게 빠르지 않을까.

/송영규 논설위원 sk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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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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