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21세기 장보고' 김재철 회장의 바다 인생을 읽다

공병호 박사 1년간 인터뷰 결실…

동원그룹 창업주된 섬마을 소년 김재철 회장 첫 평전 출간

한국전쟁 후 육지기반 사업 대신 불모지였던 바다에 승부 걸어

양심에 따른다는 정도경영 원칙… 노력 배신하지 않는 바다서 배워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평전
공병호 박사가 펴낸 '김재철 평전'


섬마을 소년은 바다가 몸서리치게 미웠다. 때를 모르고 불어치는 바람이 싫었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물길이 무서웠다. 하지만 가난을 등에 업고 살았던 11남매의 맏이에게 바다는 피할 수 없는 인생 자체였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소년은 전남 강진이 아닌 남태평양 쪽빛 바다로 향하는 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60년 후 소년은 바다를 스승으로 맞아 국내 최대의 수산기업을 일궈냈다.

김재철(81·사진) 동원그룹 회장이 자신의 '바다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평전을 냈다. '바다의 돈키호테'에서 '21세기 장보고'로까지 불리는 김 회장이 경영서를 낸 적은 있지만 평전을 통해 동원그룹의 반세기 역사를 조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기로 소문났던 김 회장은 원래 서울대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택했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모두가 육지를 기반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바다를 승부처로 삼았다. '21세기는 바다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지난 1957년 김 회장은 부산항에서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호(指南號)를 타고 사모아섬으로 향한다. 미국이 해양조사선으로 건조한 워싱턴호를 들여온 뒤 개조한 230톤급 어선이었다. 시범 조업에 불과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남쪽 바다에서 참치를 잡아 돈을 벌어오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선장조차 참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정도로 한국 수산업은 열악했다.

이후 김 회장은 30대 초반까지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선장으로 활약하며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산강국으로 자리 잡는 기틀을 닦는다. 김 회장은 "망망대해라는 수식어도 부족한 먼바다에 나가 첫 작업을 시작하는 날 새벽에 일찍 목욕재계하고 배에서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며 "세상은 나에게 뱃사람이라는 잣대를 들이댔지만 거짓이 없는 바다가 나는 마냥 좋았다"고 회상했다. '캡틴 김'은 1969년 동원그룹의 모태인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본격적인 원양어업에 나섰다. 태평양을 시작으로 인도양과 대서양까지 누비는 동안 동원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산기업이 됐다. 1982년에는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참치 캔까지 내놓았다. 이 무렵 김 회장에게 바다는 고향을 넘어 스승이자 우주가 됐다.

"바다 사나이들은 좀 거칠기는 해도 잔재주를 부리지 않습니다. 바다는 사연을 들어주거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요. 바다에서는 실력이 없으면 바로 죽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절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바다에서 인생을 깨우친 김 회장은 동원그룹의 정도경영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다.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기업가라면 양심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간 동원그룹이 탈세나 경영권 승계, 식품 위생 등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도 바로 뼛속까지 마도로스인 김 회장의 확고한 신념에서였다.

책은 경제경영 전문가인 공병호 박사가 1년여에 걸쳐 김 회장을 인터뷰한 뒤 탄생했다. 추천사를 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 평전은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처음으로 바다를 발견하고 개척한 한국 산업사에 바치는 경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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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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